요리하며 알게 된 삶의 맛들_7
본격적으로 주방과 친해진 건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했을 때다.
그 덕분에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고,
다양한 식재료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아이 덕분에 이유식으로 가득 채워진 나날들이
나를 조금 더 부지런하고 섬세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네다섯 달 때쯤 되면 이유식을 시작하게 된다.
아주 묽은 미음부터 시작해
점차 진하고 조밀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처음 이유식을 준비하며 만들어 낸 미음 한 그릇이
아이의 첫 번째 밥상이라고 생각했다.
이유식을 처음 만들 때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그 셀렘은 나를 더위마저 견디게 했다.
이유식을 준비하며 도구를 새롭게 장만했다.
뭐든 장비빨 아니겠나.
도마, 다지기, 도깨비방망이, 알뜰주걱, 냄비까지.
모두 새로 샀다.
신혼 때 주방도구를 준비하던 것과는 또 다른 설렘이었다.
더 좋은 것들을 고르고 고르는
부모로서의 욕심을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일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낯선 과정이었다.
아이는 미음을 먹는 건지 뱉는 건지,
혀로 옴짝옴짝 밀어내며 맛을 봤다.
나는 아이의 입가에 흐르는 미음을
숟가락으로 재빨리 모아 다시 아이 입으로 밀어 넣었다.
한 방울도 놓쳐선 안된다는 마음으로.
아이와 나는 작은 전쟁을 치렀다.
엄마로서의 욕심을 두 번째 만나는 순간이었고,
내 손목의 유연함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이유식도 다양해지고,
한 숟가락이 입 안에 들어갈 때마다
아이의 표정도 점점 다양해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뜨거운 건지, 맛이 생소한 건지
한참을 음미하는 그 모습이
마치 세상에서 제일 까다로운 미식가 같았다.
때로는 뱉어내기도 했고,
때로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던 순간도 있었다.
그 표정 하나하나에 따라 내 마음도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오래 관찰했다.
어떤 재료를 썼을 때 아이가 더 잘 먹는지,
농도와 입자가 아이 입맛과 잘 맞는지,
양이 적당한지 과한지 하나하나 살펴보며,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주방장이 되어
매 끼니 정성을 담았다.
아이가 이유식 그릇을 마지막 한 숟갈까지
다 먹어줄 때면 작은 영웅처럼 느껴졌다.
마주 보고 “다 먹었다!” 하며 내가 박수를 치면
아이도 환한 미소를 보이며 함께 박수를 쳤다.
모유수유를 하던 시절에는
몸과 몸이 맞닿아,
탯줄을 그리워하듯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면,
이유식을 먹이며 눈을 맞추는 이 순간은
내 아이와 내가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첫 시작처럼 느껴졌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이
아이의 몸을 통해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식은 단순히 주방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외출할 때 이유식을 준비하는 일은 또 하나의 과제였다.
아이의 식사 시간을 피해 외출을 계획하거나,
냉동시켜 둔 이유식을 보냉 가방에 담아 챙기고,
유아휴게실이 있는 곳으로 외출을 하는 제한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따뜻한 물을 이용하여 밖에서 이유식을 먹이기도 했다.
이렇게 내 생활의 모든 리듬은 아이에게 맞춰 나갔다.
그렇게 나는 단순히 요리 실력이 성장하는 것을 넘어,
부모로서의 행동력과 계획성, 그리고 유연함까지 얻었다.
내가 아이를 돌보고 키워가는 여정 자체가
나 또한 새로 배우며 성장하는 여정임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아이를 먹이고 키우는 일은
결코 아이만 키우는 일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나의 시간도, 나의 삶도 함께 자라났다.
작은 입으로 한 입 먹는 순간들 마다
내 사랑과 정성이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아이와 함께 천천히 생명을 키워가고 있었다.
한 그릇의 이유식이 차곡차곡 쌓여
아이의 몸을 이루듯,
나 역시 그 시간을 통해 부모로서 조금씩 완성되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자라는 마음,
그게 이유식이 내게 준 가장 큰 영양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