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아닌 몸으로 만든 음식.

요리하며 알게 된 삶의 맛들_6

by 글쓰카이

내가 먹는 이유가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날,

삶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놀랐다.

먹는 게 이렇게 책임감 넘치는 일이 될 줄이야.

그동안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먹었고,

그게 당연했던 나였다.

먹는다는 건 내게 맛과 배부름 이상의 의미를 가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 후,

함께 사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하고 같이 앉아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다.

“음식은 혼자 하는 사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혼자만의 식탁에서 ‘우리’의 식탁으로 바뀌어 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부부의 사랑을 더 확실히

증명해 줄 소중한 보물이 찾아왔다.

새로운 생명이 생긴 것이다.

아이를 뱃속에 품으며 깨달았다.

음식은 이제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내 입맛이나 기분을 따져 먹을 수 없었다.

뱃속에 있는 작은 생명을 위해 내 몸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을 신경 써야 했다.


평소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기회만 되면 뭐든 맛있게 잘 먹었다.

하지만 임신 초반, 입덧은 이 ‘맛있게’의 개념을 산산조각 냈다.

먹으면 토하고, 토하고 나서도 다시 먹어야 했다.


사실 무언가를 토하고 다시 입에 넣는다는 건 몸과 마음이 다 거부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를 위해 음식을 다시 입에 넣었다.

그 순간들 속에서 알게 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고 행동하는 이유에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을.

부모로서의 마음가짐이 몸으로 전해지는 시간이었다.


입덧이 지나자,

나는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혔다.

“과일을 많이 먹으면 아기가 더 예쁘게 태어날지도 몰라!”

이런 망상에 빠진 나는 온갖 과일로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우리 아기가 먹고 싶어서 그래~” 라고 합리화까지 더해서.


과일을 먹으며 내 아기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는 즐거움에 빠졌지만,

결과는 조금 달랐다.

과도한 과일 섭취로 살이 많이 불었고,

의사 선생님께 “굶어도 된다”는 폭탄 선고를 받았을 때는

어딘가 억울하기도 했다.


그렇게 긴 기다림의 끝, 드디어 출산!

내심 기대했다.

“이제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겠어!”

하지만 현실을 또다시 계획과 달랐다.

오히려 임신 때보다 더 철저한 식단관리가 필요했으니까.

내 몸을 회복시키고, 아기에게 질 좋은 모유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내 먹는 버릇 하나도 중요했다.


그 중심에 항상 미역국이 있었다.

미역국은 사실 내가 애정하는 음식까진 아니었다.

생일날 한 끼 먹는 정도였다.

하지만 출산 후 병원에서 첫 끼니가 미역국으로 시작됐고,

이어 조리원, 친정엄마표 미역국까지 앞으로 두 달 동안 내 모든 끼니는 미역국이었다.


친정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은 정말 다양했다.

소고기 미역국에서 시작해

전복, 가자미, 황태, 두부 등 새로운 변신이 매 끼니마다 등장했다.

이렇게까지 레시피를 연구해 주시다니,

엄마의 손이 아니라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의외로 이 모험(?)에 가장 신난 건 남편이었다.

조리원에서 나를 따라 매일 미역국을 먹던 그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미역국 너무 맛있다. 나도 몸이 회복되는 기분이야!”

심지어 한때 그는 초록빛 대변(!)을 통해 자신의 ‘미역국 내공‘을 자랑하기도 했다.

친정엄마는 잘 먹는 사위 덕에 더 신이 나서

산모인 내 것보다 사위의 그릇에 국을 더 담아주기도 했다.


그런 따뜻한 순간들 덕분에

나 역시 미역국을 수십 번 먹는 동안 지루함이

아닌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남편과 엄마 덕분에 웃으며 식탁에 앉았고,

마음속엔 아기를 위한 사랑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이게 아기에게 좋은 모유를 만들어 줄 거야. “

라고 생각 하며 미역국을 앞에서 숟가락을 기쁘게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음식은 손으로만 만드는 게 아니었다.

엄마들은 몸으로 아이를 위한 첫 음식을 만든다는 사실을.


지금은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차려

가족들을 먹이는 게 일상이 됐지만,

그때는 달랐다.

내가 매일 먹는 그 시간들이

곧 아이에게 이어졌다.

내가 먹었던 음식은

나의 회복과 동시에 아이에게로 흘러갔다.

손이 아닌 몸으로,

아기가 자라는 영양과 사랑을 만들어냈다.


미역국으로 가득했던 두 달여의 시간은

내게 단순한 끼니가 아니었다.

그건 날 회복시킨 엄마의 마음이었고,

아이를 위한 내 진심 그대로의 시간이었다.


같은 산모시절에도 사람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나의 사랑이 미역국이라면,

어떤 이에게는 다른 방식일 것이다.

중요한 건 사랑은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나의 작은 다짐과 몸으로 만든 사랑이

아이에게로 흘러가고,

다시 나에게 행복으로 돌아오는

이 흐름이야말로

부모와 아이의 연결이란 걸 생각하게 된다.

음식과 사랑은 그래서 닮았다.

먹고 나면 흘러가고, 흘러간 곳에서 무언가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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