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며 알게 된 삶의 맛들_10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신없는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키며 바쁘게 아침을 보낸 탓에
나의 끼니는 뒷전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김밥이 먹고 싶었다.
길가에 퍼진 따뜻한 참기름 냄새가
아침 공기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나를 붙잡았을까?
고소하고 부드러운 그 향에 발걸음이 절로 멈췄다.
‘재료 몇 가지만 사서 내가 직접 만들어 먹으면
더 저렴하고 푸짐하게 먹을 텐데.‘라는 생각을 짧게 했지만,
그런 사치까지 허락할 심적, 육체적 여유가 있지 않았다.
결국 참기름이 건네는 인사를 거절하지 못하고
김밥 한 줄을 사 먹었다.
오후께,
아이들의 하교를 도우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느닷없이 김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내가 아침에 김밥을 사 먹은 걸 알고 그러는 걸까?
놀란 것도 잠시,
아이들이 먹고 싶다 하니 반가운 마음이 금세 해처럼 떠올라
없던 힘이 불끈 솟았다.
분명 나를 위한 김밥을 만들 여유는 없었는데 말이다.
당연히 나는 아이들을 위해 손수 김밥을 만들 것이다.
“그럼 우리 마트 들렸다 가자!”
집에 있는 재료들을 생각하며
마트에서 햄과 우엉, 단무지를 샀다.
아이들은 엄마가 싸주는 김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기뻐했고,
덤으로 간식까지 하나씩 집어 들고는
신이 나서 강아지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집으로 돌아와 김밥 준비에 돌입했다.
당근은 채 썰어 기름에 달달 볶고,
시금치는 소금물에 삶아 꽉 짜서 소금에 살짝 무쳤다.
어묵은 간이 잘 배게 간장에 조리고
계란은 얇게 부쳐 김밥 크기에 맞게 썰었다.
새로 지은 밥이 완성 됐다는 소리에
적당한 크기의 볼에 듬뿍 퍼 소금과 참기름을 둘러 잘 섞으며
참기름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는데,
아침에 맡은 참기름 냄새랑 살짝 다른 것도 같았다.
문득 내 마음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밥 한 줄에 담긴 마음이라는 건
단순한 끼니나 요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돌돌 말린 사랑이었다.
김밥 안에 들어간 다양한 재료들처럼
하나하나 쌓아 올린 사랑이 어우러져
아이에게 전해질 것이다.
김밥을 만드는 과정은 그동안 알지 못하고
다 만들어진 김밥만 보였는데
엄마가 되어 그 과정에 있다 보니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그 하나하나의 손길들을.
그런 마음들을 생각하다
엄마 생각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더 나긋나긋하게 나왔다.
“엄마, 저 오늘 애들 저녁으로 김밥 싸고 있어요.”
아침에 나는 김밥이 먹고 싶지만 김밥 쌀 힘은 없어
대신 사서 먹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아이들이 김밥을 먹고 싶다 하기에
지금 김에 밥을 퍼 올리고 있다고까지 조잘조잘.
엄마는
“아이고, 힘들겠네~”
“김밥 손 많이 가는 음식인데, 그래도 너는 대단하다야.
아이들 위해서 이렇게 다 준비하고. 우리 딸도 참 엄마 다 됐네~“라며
내 노고를 걱정하시며 응원까지 해주셨다.
수다는 흐르고 흘러
엄마가 나 어릴 적 김밥 싸주신 이야기까지 갔다.
“엄마가 소풍 가는 날 새벽부터 일어나서
김밥 싸고 계시면 옆에서 꼬다리 받아먹는 게 참 맛있었는데 “
”그땐 힘들다고 생각도 못했어.
네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면서 피곤한 줄도 몰랐으니까. “
나로 인해 엄마의 추억도 살아 나는 순간이었다.
나도 떠올렸다.
아침잠이 길어지던 찰나
참기름 냄새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주방으로 가보면
이미 산처럼 쌓여 있는 김밥 더미 속에서
밥을 꾹꾹 펴던 엄마 모습.
그 옆에 앉아 썰어둔 꼬다리를 아기새처럼 받아먹으며
그날 소풍에서 친구들과 나눠 먹을 김밥을 기대했던 어린 날의 기억.
오늘 아침,
내가 참기름 냄새에 이끌리듯 김밥집으로 향한 건
육아로 인해 심적, 육체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나를 그때의 추억으로 달래고 싶은 무의식의 작동이었을까.
“엄마 김밥 정말 맛있었는데, 엄마 김밥 먹고 싶다!”
나지막하게 말하자 엄마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김밥? 그거 금방 싸지~! 다음에 집에 오면 엄마가 해줄게. “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김밥을 싼다고 할 때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한다고, 딸 힘들겠다고, 엄마 다 됐다고 하셔 놓고
내가 엄마가 싸준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하자
금세 힘이 나는 목소리로 김밥 뭐 별거냐는 듯 말씀하시는 모습에.
어느새 우리 집 아기새들이 달려와
“엄마~ 아~” 한다.
나는 아이들 입에 꼬다리를 하나씩 넣어주며 다시 깨달았다.
엄마라는 존재의 마음을.
사랑을 차곡차곡 담아 먹여 키우는 그 엄마의 마음을.
자라면서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든 응원해주셨고
먹고 싶은 건 뭐든 만들어 주셨고
아플 때 꼭 지켜주셨고
때론 엄하게 혼내며 세상을 알려주셨다.
그 모습과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내가 이루고 싶었던 엄마의 꿈이었는데
추억 속의 김밥을 마는 엄마 모습과
내 모습이 많이 닮아 있다.
사랑을 돌돌 말아 아이들에게 전하며,
그 옛날 엄마의 마음을 흉내 내고 있는 내 모습.
그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나다운 엄마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