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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Mar 27. 2016

인간의 굴레에서

인생은 양탄자의 무늬를 짜는 의미 없는 거라고 하지만.


승리보다 더 나은 패배에 관하여


  삶이나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괴테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고 한다. 그만큼 인생은 쉽지 않은 고역과 같은 길이라 그런 뜻일 테다. 누구에게나 심지어 돈 많고 똑똑한 인간에게 조차 인생이란 과제는 쉽지 않다.

  서머싯 몸은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 주인공 필립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자서전적 소설이니만큼 허구가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 실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걸 스토리텔링으로 풀어주고 있다.


   자의식은 고통을 통해서 자라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필립은 한쪽 다리가 불구인 절름발이이다. 소설은 한 젊은이가 인생과 사회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그린 교양소설이라고 하는데, 왜 하필 절름발이라는 설정을 뒀을까? 행복한 사람을 글을 쓰지 않는다.라고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토지>의 박경리는 행복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알랭 드 보통은 불행한 연예시절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어디선가 읽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도스도옙스키 역시 그의 인생은 행복과는 무관한 도박과 무절제함의 인생을 살았다. 그들은 우리가 정의하는 행복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고 그렇기에 글을 쓸 수 있었다. 불행은 자신의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허락한다. 왜냐면 거기에는 항상 "왜?"라는 의구심이 반드시 따라붙는다.

  절름발이 필립은 장애를 가졌기에 괴롭힘과 편견으로부터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반면에 불구인 육체적 자아로 인해서 꾸준히 인생에 대한 물음을 가지는 영민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갓난 아이는 자기 몸이 자신의 일부임을 알지 못한다. 주변의 사물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제 발가락을 가지고 놀면서도 그것이 옆에 있는 딸랑이가 아니고 제 몸의 일부임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점차 고통을 통해서 제 육체의 실재를 이해하게 된다. 사람이 자신을 의식하게 되는 과정에도 같은 체험이 필요하다.
1권. p.82

  자의식이라는 것은 고통을 통해서 자라는 것이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결코 닭이 될 수 없듯이, 우리가 자라면서 정신적, 육체적 성장통을 겪지 않고서는 결단코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는 주인공 필립의 장애는 불구인 다리지만, 우리에겐 무엇인 장애인가?


  평범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평범한 필립

  주인공은 아홉 살에 천애고아가 되어, 백부와 백모의 손에 자라게 된다. 그리고 신체적 불구로 인해 괴롭힘과 편견의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관할사제인 백부의 권유를 무시하며 떠난 1년간의 독일 유학, 백부의 권유로 시작한 런던에서의 공인회계사 수업, 미술적 재능의 확신을 가지고 떠난 2년간의 파리 유학에서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의사의 길 또한 녹록하지 않다. 이것은 주인공 필립이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완전하지 못한 육체적 자아로 끊임없는 독서를 하였고,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으로 다양한 직업적 경험을 하였지만 번번이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다. 평범하지 않은 인생일지는 모르나, 우리와 같이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림을 잘 그리지만 그림으로 먹고살 수 없었던 필립처럼,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그걸로 먹고살 수 없는 나, 달리기가 조금 빠르다고, 노래를 잘 부른다고, 얼굴이 조금 예쁘다고 다 그걸로 성공하지 못하는 우리처럼. 그는 우리 과거의 젊은 자화상이다.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인생

  필립은 나이 많은 여자 미스 윌킨스, 절대 사랑해선 안 될 여자 밀드레드, 후회하지 않을 여자 노라, 그리고 샐리와의 만남을 통해서, 성인이 되어 목도하게 되는 백모, 백부의 죽음을 통해서, 주식의 실패로 인한 빈곤의 삶을 통해서 인생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사랑에 자신의 목숨마저 바칠 듯이 달려들고 사랑의 실패로 자신의 생을 포기하려고 마음까지 먹었지만,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아니듯이 서서히 극복해 나간다. 또한 실연의 아픔이 아무리 크다 한들  빈자의 고통에는 결코 비할 수 없다는 것을 필립의 노숙 생활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빈자의 고통으로 백부의 죽음을 기대하게 되는 처절한 경험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물질의 중요성을 가슴 아프게 새겨준다. 그는 유학 당시 배고픔으로 죽어갔던 친구, 배고픔으로 체면까지 버려야 했던 선생을 직접 보았지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전재산을 다 잃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체득하게 된다. 인생은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필립의 인생은 곧 우리의 인생과 같다.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고자 하는가? 예쁘고 잘 생긴 이성을 만나,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남들의 관심과 부러움을 받으며 살고자 하지는 않는가? 아니면 어떤 의미를 인생에서 찾고 있는가? 남들에게는 소박한 꿈들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속물적인 인생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필립은 죽음을 직전에 두고 찾은 애설니 집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다. 애설니는 돈 잘버는 직업을 가지지 못했으며, 아홉 명의 자녀를 키우기 위해 휴가 역시 시골 마을에서 홉이라는 곡식을 따러 가야 한다. 그리고 첫 부인과의 결혼은 실패했으며, 이혼마저 하지 못한 체 두번째 부인과 함께 살아간다. 그런 그를 만나서 진짜 인생이 무엇인지 알아간다.


  작가가 말하는 인생이란.

해답은 분명했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2권. p.364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사람의 삶에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태어난다거나 태어나지 않는다거나, 산다거나 죽는다거나 하는 것은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다. 2권. p.365


  작가는 필립의 인생을 통해서 인생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작가는 허무주의이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고 할 수 없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왜냐면 실패가 의미가 없기에 성공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인생을 무엇하러 산다는 말인가?


그는 의미 없는 삶의 무수한 사실들로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짜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가장 단순한 무늬, 그러니깐 사람이 태어나서,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음을 맞는 그 무늬가 동시에 가장 완전한 무늬임을 깨닫지 않았던가? 행복에 굴복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그것은 수많은 승리보다 더 나은 패배였다. 2권. p.500

  허무주의자이지만 한편으로 작가는 탐미주의자였다. 아름다움을 쫓는 그는, 인생이란 하나의 양탄자의 예쁜 무늬를 짜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불행과 행복 모두 그 나름의 무늬를 가지고 인생이란 양탄자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인생에 의미가 없다고는 하나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허무한 인생에서 행복을 인정하는 것은 실패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승리보다 나은 패배라고 하지 않는가!


  해피엔딩이 아닌 해피엔딩

  <인간의 굴레에서>는 "햇빛이 빛나고 있었다."라고 끝난다. 필립은 굴곡진 유년과 청년시절을 보내며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가. 그럼에도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햇빛을 받으며 행복감에 도취되고 만다. 돈이 없어 죽으려고 했던 그, 사랑이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돈이 없이는 못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종국에 그를 행복하게 해준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한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작가가 서문에 밝혔듯이 <인간의 굴레에서>는 긴 소설이다. 나 같은 초보 독서인이 단숨에 읽고 독후감을 쓰기엔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 읽었다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고 글로써 정리한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정리하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기쁨이자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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