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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May 08. 2016

여자는 허벅지

나에게 여자의 허벅지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쯤 머라이어 캐리의 그것이다.

맥주를 마시며, <여자는 허벅지>를 읽었다. 

"허벅지였습니다."

"허벅지?" 

"아, 여자의 허벅지가 이렇게 굵은 것이로구나. 처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굵고 하앴어요." p. 268


나에게 여자의 허벅지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쯤 머라이어 캐리의 그것이다. 그녀가 물기가 촉촉한 바닥에 누워서 찍은 사진을 보며, '여자의 허벅지가 저렇구나. 생각보다 굵지만, 예쁘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때의 허벅지가 머릿속에 박혀서 그럴까? 가늘고 힘없어 보이는 허벅지보다는 튼튼해 보이는 허벅지가 아름다워 보인다. 튼튼함과 굵음의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허벅지는 사람의 신체 중에서 근육량이 꽤 많은 부분이다. 최근에는 허리, 엉덩이, 허벅지 근육은 우리 인체의 코어 근육으로서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그 중요성이 대단히 높다고 한다. 건강적인 측면에서도 허벅지 근육은 상당히 중요하며 미관상 여자든 남자든 다리가 지나치게 가늘면 예쁘지 않다. 성별을 떠나서 가는 허벅지보단 튼튼한 허벅지가 더욱 관능적인 것은 단순히 성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의 척도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더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제목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얼마 전 <여자는 허벅지>라는 책 소개글을 읽고, 내용보다는 관능적인 제목에 호기심을 가졌다. 결국 공공장소에서 짬이 날 때 읽거나, 맥주 안주로 읽고 싶어 구입을 하였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게 이 책을 얼마 전 동료 회식 자리에 들고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아우성을 치던데, 이 책의 내용은 전혀 선정적이지 않다.라고 말해 주었지만 웃을 뿐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니, 허벅지가 어때서? 남자든 여자든 허벅지 중요한 거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다나베 세이코의 제목 작명 실력은 기립박수 감이다. 


이 책은 1928년생의 여성작가가 70년대에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 <현의 노래>에는 남녀 간에 정을 통하는 장면이 직간접적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그 표현방식 다소 질척한 느낌이 들고, 매우 남성적이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고 침을 한번 삼키게 된다. 물론 내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허벅지>를 읽으면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이 책을 떡볶이 가게에 줄을 서서 기다리며 십여분 정도 읽었고, 아이와 텔레비전을 보며 읽기도 하였다. 읽으면서 주변의 시선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것에 대한 여성작가의 표현은 매끄럽고 다소 앙증맞기도 했다. 아마도 "다나베 세이코"라는 이 작가분의 탁월한 재능과 함께 여성이라는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요즘 양성평등 시대라고는 하나, 술자리나 모임에서 남성의 음담패설은 왠지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 반면에 여성의 그것은 주변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에 일조를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남성 편향적 생각일 수 있으나, 내 사회생활의 경험에 따르면 그러하다. 그러나 특출 나게 음담패설의 허용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남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그맨 신동엽 정도?

그러나 이 여성 작가는 신동엽과는 다르다. 그녀의 음담패설에는 웃음과 함께 남녀의 시각 차이와 습성에 관한 담론이 들어있다. 그리고 여성작가이면서도 여성편향적이지 않는 것은 "같이 노옵시다아"하며 매일 들르는 가모카아저씨 덕분일 테다. 다소 변태 같기도 하고 추태를 부리는 이 아저씨와 작가의 대화는 일방적인 여성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매번 남성의 욕구와 여성의 욕망이 엎치락뒤치락하여 읽는 재미가 있다. 

젊은이가 노인네 티를 내는 것도 그리 자연스러운 건 아니지만, 노인이 젊은이와 경쟁하려고 하는 것도 못 봐주겠더라. p. 119

세월에 배 나온 남자에 대해서 친근함을 가진 작가는 이 세상에는 배 나온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도 꽤 된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성적 취향을 밝힌다. 여기서 가모카 아저씨는 작가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런 위로를 젊고 예쁜 여자가 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걸핏하면 중년 할멈들이 그런다니까."라고 말이다. 이렇게 둘의 대화는 음담패설을 남녀 편향적으로 이끌어가지 않고, 서로의 습성을 잘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니 이 음담패설은 질척하기 보다는 앙증맞고 바삭하기까지 하다.

간밤에 맥주 한잔을 마시며, 안주로는 이만한 책이 없을 듯하다.


앗, 읽어봤는데 전혀 야하지가 않다? 이건 1970년대 쓰인 글이라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야하기만 하면 그건 외설이잖아요. 이 에세이는 성에 대한 남녀 시각 차이와 남녀 습성에 관한 담론입니다. 충분히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며 읽어야 됩니다. 그러면 꽤 재미있어요. 글을 읽다가 '아하, 이렇구나!'하고 속으로 웃을 수도 있어요. 저는 야하기보다는 재미있었어요. 음. 여자 선배가 해주는 농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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