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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May 15. 2016

디어 존, 디어 폴

편지 좋아하세요? 

편지 좋아하세요? 

<디어 존, 디어 폴>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 소설가 J.M 쿳시와 달의 궁전으로 유명한 소설가 폴 오스터의 3년간 주고받은 편지들을 묶은 서간문이다. 

그러니 이 책은 소설과 달리 작가가 1명이 아니니 그 주제 또한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책의 주제는 다양하다. 두 명의 지성인은 소박한 안부로 시작하여 우정, 섹스, 스포츠, 전쟁, 전자책, 경제,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 두 사람은 갖가지 주제에 대해서 서로의 의견을 묻기도 하고 답하기도 하는데, 지성인의 통찰을 엿볼 수 있는 재미가 다소 있지만, 그 주제를 심도 있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아마 더 깊이 들어간다면 다음 주제로 넘어갈 수 없어서 대충 마무리 지어버리는데, 그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 두 지성인의 편지를 읽다 보면, 한 주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는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받는 사람이 누군지 헷갈린다. 그래서 글을 읽는 중에 수취인과 발신인을 확인하게 되지만, 한참을 읽다 보면 묘하게 그 차이를 직관적으로 '아, 존이 말하고 있구나. 아, 이번에 폴이구나.'하고 알게 된다. 그런데 그들의 가치관이나 정치적 색채 때문에 그들의 글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문체가 달라서 알게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편지를 읽으면서 존은 다소 보수적이고, 폴은 진보적이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오히려 폴이 보수적이고, 존이 보수적이었다. 물론 주제에 따라서 다를 수는 있지만, 적어도 내가 다시 읽어본 주제는 그러하였다. 그러니 그들의 사상과 색채 때문에 둘을 구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투와 문체-물론 번역이긴 하지만-에 의해서 구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백미는 그들의 통찰을 엿보는 것이고, 묘미는 두 사람의 견해 차이를 나도 모르게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두 사람의 문체가 미묘하게 다르며, 그것은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했을 테다.


소설은 한 사람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서간문은 두 사람이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다르냐고요?

제가 따분한 늙은이가 되었나 봅니다. 고전 소설의 비평 연구판 중에도 몇 부분을 축약하거나, 또 다른 결말을 수록하거나, 사진까지 넣은 것이 있는데 말입니다. 영화를 넣는 게 왜 안 되겠습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안의 무언가, 예를 들면 <추락>을 읽다가 4장 두 번째 페이지 문장 한 가운데 삽입된 영화 각색판으로 클릭해서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반감을 느낍니다. P.240  폴
우리가 사랑했던 죽은 이들도 땅 속 구덩이에 던져 넣거나 불길에 집어넣는데, 죽은 책을 없애 버린다고 그게 왜 신성 모독이 되겠습니까? 
책을 없애고 책의 이미지, 전자화된 이미지로 대체하는 겁니다. 죽은 자들을 없애고 사진으로 대체하듯이요. P. 243 존

전자책의 등장에 두 사람은 종이책과 도서관의 몰락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하지만, 폴에 비해 존은 좀 더 관대한 입장이다. 책은 그저 사물에 지나지 않으니 그 안에 담긴 그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그에 비해 존은 책이 주는 관념, 그 환상이라는 게 있어서 도무지 책의 퇴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한 가지 주제를 아주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서로의 견해 차이를 확인할 뿐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둘은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다. 무려 80통 정도를 말이다. 

사람이 모여서 하지 말하야할 대화의 주제가 정치, 종교, 또... 무언가 있는데. 

이 두 사람은 그런 것들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내공이 있어 보이며 서로의 견해를 확인하고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한다. 그것만 하더라도 두 사람의 편지는 꽤나 읽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배울만한 부분이 있다. 


나도 애네들처럼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주고받거나, 편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질 텐데. 부럽고 아쉽다. 그런데 유명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로 돈을 벌다니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다. 출판사의 기획의도였는지는 몰라도. 

부러우면 출세하라고,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다 맞는 말이다. 이래저래 질 수밖에 없고 부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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