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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May 17. 2016

채식주의자

......꿈을 꿨어. 그 꿈은 왜 꾼 것일까?

헉, 아침에 눈뜨자마자 검색해보니 수상했네요. 지난주 영풍문고 대구점에는 맨부커상 후보작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오늘(17일)부터는 맨부커상 수상작이라고 되겠군요. 문학계의 금수저 일지는 몰라도 그녀는 참 대단하네요. 같은 한국인으로서 승승장구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채식주의자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vegan과 고기와 생선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인 vegetarian으로 나뉜다. vegan은 달걀, 우유 등은 물론이고, 그런 음식이 첨가된 식품들도 먹지 않으며, 동물로 가공된 공산품 조차도 사용하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말한다. vegetarian은 가급적이면 채식을 선호하며, 고기와 생선을 먹지는 않지만, 우유와 달걀 정도는 먹는 비교적 가벼운 채식주의이다. 그런데 성경적으로 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은 채식에서 점차 육식까지 그 범위를 넓혀갔고, 현재는 종교, 문화, 풍습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채식과 육식을 구분하지 않고 먹고 있다. 그러니 둘 중에서 한 가지만 먹는다고 하면, 그러니깐 육식주의자나 채식주의자는 우리가 아는 보편의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우리는 당연히 의문을 가진다.

왜 채식을 할까?


노벨문학상, 콩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불리는 맨부커상의 최종 후보에 국내 최초로 선정되었다고 하여, 화재를 모으는 책이 있다. 바로 한강의 채식주의자이다. 이 소설은 한강의 연작 소설로서 3개의 단편소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 연결되어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를 구성한다.

...... 꿈을 꿨어 p.14


주인공 영혜는 꿈을 꾼 이후에 채식을 하게 된다. 비교적 가벼운 채식주의가 아니라 엄격한 채식을 시작하여 점차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로 바뀌어간다. 바로 꿈 때문이다.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한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 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p. 19


영혜의 남편은 그녀의 지루할 만큼 평범한, 특별한 매력도 없지만 눈에 띄는 단점도 없는 모습에 결혼을 결심한다. 그녀의 문난한 성격에 그는 무장해제된 군인처럼 편안함을 느끼며 부끄러움마저 잊고 만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채식을 결심한 이후부터 달라진다. 그는 그녀를 되돌리기 위해 처가 식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심지어 장인은 그녀의 뺨을 때리고 강제로 고기를 먹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오히려 그녀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녀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채식주의자>, 영혜는 vegan이다. 꿈을 꾸고 냉장고의 육식용 음식은 죄다 버린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채식을 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남편에게서 고기 냄새가 난다며 그와 가까이하지 않으려 한다. 그녀는 생명력을 잃어가며 더욱더 엄격하며 극단적인 채식에 말라간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잔혹하게 만들었을까? 단순히 그 꿈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그 꿈은 왜 꾸게 된 것일까?


아버지의 손찌검은 유독 영혜를 향한 것이었다. 영호야 맞은 만큼 동네 아이들을 패주고 다니는 녀석이었으니 괴로움이 덜 했을 것이고, 그녀 자신은 지친 어머니 대신 술국을 끓여주는 맏딸이었으니 아버지도 알게 모르게 그녀에게만은 조심스러워했다. 온순하나 고지식해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던 영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 모든 것을 뼛속까지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p.192


영혜와 그의 언니, 인혜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용사로 무공 문장을 받았으며, 그의 자랑거리는 월남전에서 베트콩을 죽인 것이다. 심지어 어릴 적 영혜를 물었던 개를 도축하기 위해 오토바이에 목줄을 걸어 죽인다.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고. 그리고 영혜마저 그 고기를 먹는다. 아주 맛있게.

아버지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군인의 의무로 안면부지의 사람을 일곱이나 죽이고, 한때 키우던 개를 가장 잔혹하게 도축한다. 영혜는 개를 향한 증오심에 그 폭력을 묵인하며,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가족이었던 개를 먹는다. 모든 것은 바로 폭력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맹목적인 살인과 잔혹한 도축 그리고 그녀의 묵인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부녀는 그 행위에 숨겨진 상처를 몰랐다. 심지어 글을 읽는 우리마저 그러하다. 하지만 그것은 살인이며 폭력이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을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건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p.43


영혜는 살인과 폭력에 저항한다. 그 저항의 방식이 바로 채식이다. 그녀의 채식은 생명력을 잃어가는 채식이다. 두 자매는 폭력과 살인으로 점철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영혜는 채식이고, 인혜는 버티는 것이다.

......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p.191

생명력을 잃어가는 그녀의 채식은 사실,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녀는 채식이 아니라 나무가 되려고 한다.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나무 말이다. 나무가 되기 위해서 흙으로 가야 한다. 결국 그녀는 죽음을 통해서만 완전한 채식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영혜의 죽음을 묵인할 수 없었던 인혜는 그녀를 살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그러나 종국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 어쩌면 꿈인지 몰라.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p. 221


한 가정이 풍비박산이 되었다. 인혜와 그의 남편, 영혜와 그의 남편, 두 자매의 이혼, 자살과 금기시되는 섹스 등으로 얼룩진 이야기이다. 서정적이며 잔혹하다. 이 모든 것은 채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살인과 폭력에 의한 상처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채식을 통해 완성되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나는 다소 통속적인 소설이 좋다. 이런 류의 소설은 문학적 가치는 있는지 몰라도 읽기도 어렵고, 내가 읽은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222쪽 해설은 두줄 읽고 책을 덮었다. 문학평론가가 해설을 어렵게 썼구나 싶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문학은 삶의 또다른 표현방식이니,  있는 그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듯이. 문학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이건 참 난해하다. 지난 주말에 이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말했다. 같이 읽어보자고. 그리고 한 달 뒤에 만나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때 한번 더 읽어보려고 한다. 그때 영혜의 형부, 두 자매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공감은 못하더라도.


그런데 책을 읽으며, 곳곳에 흑으로, 형광으로 칠을 하며 읽었다. 그녀의 글을 매우 서정적이라서 의문투성이지만, 문체가 아름다운지 나는 모르겠다. 그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시상 결과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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