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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May 24. 2016

소년이 온다.

나, 너 그리고 우리는 고귀해. 그리고 그들도 고귀해.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혁명 때 등장한 구호인데, 이것이 시간이 흘러 의미가 변한다. 박애는 프랑스 말로 '프라테르니테'인데, 뜻이 형제애이다. 이 형제애 안에 여자는 속하지도 않고, 혁명에 동참한 사람만이 형제이다. 형제에 속하지 않는 유태인 600만 명을 죽인 히틀러는 독일의 형제애를 실천한 것이고, 백인들은 그들의 형제애를 위해 흑인을 짓밟고, 일본은 형제가 아닌 조선을 처참하게 유린했다. 박애라는 개념 안의 형제애는 어마무시한 민족주의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어령 <소설로 떠나는 영성 순례> 요약.


나, 너 그리고 우리는 고귀해. 그런데 우리까지만 고귀하다. 그게 아닌데, 우리가 고귀하니깐 그들도 고귀해야 하는데, 나와 다르고 이념이 다르니깐, 지금 내 자리에 서있지 않으니깐 틀렸다는 것이다.

나, 너 그리고 우리는 고귀해. 그리고 그들도 고귀해. 이게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동족상잔의 비극과 수없이 만행된 양민학살 그리고 군부 정권 아래의 폭력과 살인, 이 모든 것이 "우리"에서 "그들"까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 너 그리고 우리는 고귀해. 그리고 그들도 고귀해.

한강,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항쟁(운동)에 관한 작가의 외침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왜 이토록 무너지는가, 인간의 폭력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수많은 질문과 끝없는 고민을 하게 되는 책이다.


그러니깐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 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p. 134


영화 <화려한 휴가>를 봤다. 그런데 영화는 책의 슬픔과 세밀한 안내를 따라오지 못한다. <레 미제라블>, <파이 이야기>도 영화보다는 책이 훨씬 그 세계 속으로 깊이 독자를 안내한다. 책으로 읽으면 적어도 10시간 많게는 3주간은 따라가야 할 이야기들인데, 그걸 3시간에 쫓아간다고 생각하면,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화려한 휴가>보다 <소년이 온다>가 더 참혹했고, 더 미안했고, 더 가슴이 아팠다. 책을 읽으며, 누군가에게 참 괜찮다, 좋다,라고 말하면 뭔가 허전했다. 그게 아닌데, 그런 이야기가 아닌데. 이건 그렇게 나눠야 할 아픔이 아닌데.


5월 27일, 전남도청 상무관의 시민군은 진압에 산화되었지만, 이야기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는 옆구리에 총을 맞아 쓰러진 친구 정대의 시신을 찾기 위해 전남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한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전남도청 상무관은 계엄군이 주둔하던 곳이었다. 가자! 도청으로! 그렇게 시민군에 의해 전남도청은 열흘간 희생자들의 주검의 임시 안치소이자 빈소였고, 민주항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시민군의 결사항전으로 광주 외곽으로 후퇴한 계엄군은 5월 27일, 대대적인 무력진압에 나선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확대되었을 당시, 군은 거리에서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발사했다. 인도적 이유로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던 납탄을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박정희의 양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전두환은, 만에 하나 도청이 함락되지 않을 경우 전투기를 보내 도시를 폭격하는 수순을 검토하고 있었다. p. 206


계엄군의 진압에 시민군은 그곳에서 산화되고 만다. 하지만 산화된 그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80년 5월의 광주에서 목숨을 잃은 동호, 정대, 그의 누나 정미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진수, 선주, 은숙, 그리고 동호의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80년 5월의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5월에 우리는 다시금 이런 이야기를 펼쳐 들고 기억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상무관에서 산화돼버린 그들의 혼령과 가족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꿈보다 더 잔혹상 생시"를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저흰 교회에......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람의 팔이 어떤 것인지 너는 보았다. 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보았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넘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p. 25


그렇게 사람들은 폭력 앞에서 쓰러져갔다. 무슨 일인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피를 흘려야 했고,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혼령이 되어갔다. 억울했을 것이다. 묻고 싶었을 것이다. 죽어서도 묻고 싶었을 것이다. 왜? 도대체 왜 죽였냐고 말이다.


그들은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p.52


79년 부마항쟁, 80년 광주 민주항쟁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도처에서 만행된 이념의 잔혹한 살인에 수많은 이들이 이유를 모른 채 죽어갔을 것이다. 그들의 편에 서지 않았고, 그들의 형제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죽어갔다. 이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주어야 하는 것인가. 시간이 흘러 기억이 풍화되었다고,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억울하게 죽었지만, 그들을 죽게 한 자는. 여전히.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처럼 고귀하다.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당신은 자신에게 물은 적이 있다. 모든 게 지나갔지 않은가. p. 161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화재는 50대 남성의 신병 비관으로 인한 방화였다.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은 대부분 대피하였으나, 반대편 열차로 불이 옮겨 붙으며 약 200명의 소중한 인명을 잃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어떠할까. 그들의 생시는 과연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하며 학생들을 포함하며 승격 약 300명이 실종, 사망한 대참사가 있었다. 세월호 사고 처리 과정 중에서 유족들에게 자식의 목숨 값으로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다고 비수를 꽂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옥보다 못한 생시를 사는 그들에게 그 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고귀함을 잊고 비수를 사정없이 꽂는다. 한 인터뷰 관련 글을 보니, 대구지하철 화재의 유족은 대구시청에 신나를 실은 차로 돌진하려고 했다고 한다. 대구지하철 참사가 자신의 신병 비관 방화인데, 그 피해자 역시 그렇게 한다는 것은 그들의 고통은 외면한 우리들의 잘못이 아닐까.


나, 너 그리고 우리는 고귀하다. 그러니 그들 역시 고귀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산다. 나, 너 그리고 우리까지만 고귀하다. 대구지하철 참사와 세월호에서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족의 아픔과 고통은 그들의 몫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금세 잊고 우리는 살아간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 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p. 85


상무관에서 동호를 구하지 못한 은숙, 상무관에 살아남고 살과 뼈를 도륙하는 고문을 받은 진수, 여전히 광주에 머물러있는 선주 그리고 아들을 먼저 보내야 했던 동호 어머님의 한(恨), 그 모든 것은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무력 진압으로 산화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아니 나 같은 이들은 역사에 관심이 없고, 그 역사 이면에 숨겨진 아픔에 무관심하다. 왜냐면 진실은 아픔을 동반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속박 없이 글을 쓰는 것 또한 그들의 숭고함과 고귀함 덕분인데.


내년(2017년)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5월 18일이 되면, 다시 읽어야겠다. 그리고 그들의 고귀함과 숭고함을, 아픔과 눈물, 억울함과 분노를 잊지 말아야겠다. 매년 기억해야겠다. 이 책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지난번에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다소 버거웠다. 시인이 쓰는 소설은, 문장 하나하나가 묵상과 관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막무가내로 읽어낼 수가 없다. 그랬는데, 모르겠다. 그냥 읽는 김에 한 권을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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