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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May 30. 2016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사랑에 모범답안은 없지만, 풀이는 가능하다.

여화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8절.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김수희 <애모>


사랑, 인류의 시작과 함께 출발했지요. 그런데 그 사랑은 참으로 어려워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두 남녀의 연애는 아무짝에도 재미가 없고, 야하지도 않은, 더군다나 플롯마저 진부하여 누구나 쓸 수 있을 정도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우연히 그것도 운명적으로 우연히 만나, 호감을 가지고 조금씩 알아가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들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통과의례를 거치며 서로를 알아가고, 그러다 멀어지며 헤어진다. 그리고 실연에 아픔으로 힘겨워 하지만 다시 그 이별에 적응한다. 우리들의 사랑에 그 아무리 개별성이 존재한다고 하나, 그것은 보편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깐 이 정도의 스토리는 누구나 쓸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정도의 연애는 누구나 하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연애는 과연 몇 명이나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알랭 드 보통의 소설에 나오는 연애는 아주 보편적인 연애이다. 그러니깐 스토리는 아주 지루하다. 그런데 이것이 독자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들고, 기가 막혀서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심지어는 너무 재미있어서 웃게 된다.


❖ 사랑, 그걸 하면서도 여전히 그걸 찾게 만든다.


사랑이란, 딱 이것이다고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미묘하며 복잡한 감정이다. 우리들은 그러한 "형상(形象)"을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지칭하고 있지만, 서양의 역사를 보면 그리스인들은 사랑을 복잡한 그 감정만큼이나 다양하게 구분하고 있다.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


사랑도 끼리끼리 하는 거라 믿는 나는
좀처럼 두근두근거릴 일이 전혀 없죠. <혁오 밴드, 위잉 위잉>


요즘 사랑(에로스)은 예전과는 달리, "썸"이라는 게 있단다. 두 사람이 시작하기 전에 설레는 무언가가 있어야 된단다. 그 무언가는 어느 정도 맞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거라, 예전처럼 "일곱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만 믿고 구애를 하게 되면, 경찰서에 출두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예전에 비하면 사랑의 낭만이 많이 사라졌다. 돈 좀 없고, 인물이 좀 못나도 뚝심 하나 가지고 상대에게 고백하는 그 낭만 말이다. 그 낭만에 못 이겨 마음을 주는 순수함도 예전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한다. 시대가 변했다고 사랑의 행태가 변했다고 그 사랑의 본질마저 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혁오 밴드의 노래나 젊은이들의 썸은 시대적 연애문화일 뿐이다.


왜냐하면 "사랑"이라는 것은,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이 말했던 "이데아"가 아닌가. 최고의 관념이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저 인간의 철학적 사유로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실체가 없는 관념이다. 그러니 집을 짓는다거나, 요리를 한다는 것처럼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보편성 안의 그 개별성은 너무나도 미묘하게 각각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사랑을 하면서도 끝없이 사랑을 찾게 만든다. 그니깐 사랑은 어렵다.


❖ 사랑의 개별성에 보편성을 찾아서 풀이해 준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랑의 개별성은 아무리 복잡하다고는 하나, 그것이 사랑이라는 보편성을 절대 넘을 수 없다. 그러한 것을 철학자들은, "개념", "관념"이라고 하면서, 그러한 것들, 사랑, 선함, 아름다움, 정의에 대해서 논의를 해왔고 하고 있다.

그러니깐 우리가 하는 개별적인 사랑이 각각의 차별성을 띄고 있지만, 그것은 사랑이라는 보편적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고 그렇기 때문에 풀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법답안은 없지만, 풀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 친구 중, 연애를 시작하면 한 달을 못 넘기는 녀석이 있다. 처음에는 상대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구애를 하다가, 상대가 그 사랑에 보답을 하는가 싶으면 헤어진다. 하도 이상해서 그 이유를 물어보면, 그때마다 갖은 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성격이 모가 났다거나, 얼굴에 점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다리가 굵다거나, 손가락이 가늘지 않다거나 말이다. 무슨 그런 이유가 있나 싶지만, 자신도 모르겠다고 답답하다고 한다.


사랑의 보답을 받는 것이 분명 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사랑과 자기 혐오 사이의 균형에 달려있다. p. 24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보편적으로 우리는 나보다 나은 부분을 발견하고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니깐 상대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사랑을 주기만 해도 행복하고, 그 사랑에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다 상대가 나의 사랑에 보답을 하려고 하면, 그때 문제가 발생한다.

분명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서 사랑했는데, 이 사람이 나같이 별 볼이 없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를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 역시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더 이상 좋아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면서, 상대의 가치를 함께 높여 사랑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가 있고, 자기를 혐오하는 사람은 나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고 동시에 상대의 가치 마저도 상실해버려 그다음 단계는커녕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하는 사랑은 각각 그 모습이 다르지만, 그 사랑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모범답안을 찾기는 어렵더라도 풀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겪은 연애의 개별성에서 보편성을 찾아준다. 다시 말하면, 자전적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사랑의 보편성을 철학적으로 풀이해 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진부한 스토리의 연애이지만,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


독서란 작가와 독자가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는다는 것은 지성인과 연애에 대해서 단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지는 것이다. 그의 연애담을 읽을 때는 맥주를 마시며 잡담을 하듯 편하게, 연애의 철학적 해석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진지하게 대하면 될듯하다. 책 한 권에 맥주와 커피를 마시며 지성인과의 만남, 이 책은 그러하다.


이제 이렇게 긁적일 미천이 슬슬 떨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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