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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Jun 04. 2016

당신은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신의 존재는 믿음의 문제이다.

얀 마텔, <파이 이야기>



"내 이야기를 들으면, 젊은이는 신을 믿게 될 거요."

<중략>

"그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신을 믿게 될 거라구요?" p.10


파이 이야기는 한 작가의 여행에서 시작된다. 소설을 쓰기 위해 찾아간 인도, 폰티체리에서 작가는 한 노신사를 만난다. 작가는 노신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


주인공, 파이는 폰티체리의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에 의해서 다양한 동물들을 보며 자란다. 어릴 적부터 동물에 관한 지식이 많았던 그는, 신을 사랑했고 그래서 이슬람교, 힌두교, 가톨릭교를 믿으며 자란다. 아버지는 동물원 운영이 어렵게 되자, 가족을 데리고 폰티체리에서 토론토로 이주를 결심한다.

그들은 일본 화물선 '침춤 호'를 타고 인도의 마드라스 항을 출발하여, 태평양을 항해한다. 그리고 '침춤 호'에는 동물원에서 정리되지 않은 동물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벵골 호랑이, 오랑우탄, 얼룩말, 하이에나 등.


배가 가라앉았다. 괴물이 내는 금속성 트림 같은 소리가 났다. 물건이 수면 위로 쏟아져 나오더니 사라졌다. 모든 게 비명을 질러댔다. 바다며 바람, 내 마음까지, 구명보트에서 보니 물속에 뭔가가 있었다. p. 143



❖ 첫 번째 이야기-믿기 어렵지만, 설명이 가능한.

파이는 물속에서 "리처드 파커"를 발견한다. 마드라스 항에서 "침춤 호"에 함께 탑승한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벵골 호랑이는 바다를 헤엄쳐서 구명보트에 탑승을 한다.


"침춤 호"는 침몰했다. 침몰 직전, 파이는 선원들에 의해서 구명보트에 강제로 던져지게 되고, 가족과 떨어져 그 보트를 타고 탈출한다. 그 보트에는 탈출 직전 배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얼룩말과 벵골 호랑이 그리고 파이가 탑승하였다.

맙소사!

그런데 구명보트를 덥고 있던 방수포에는 하이에나 한 마리가 더 있었다.

파이는 태평양 한가운데 구명보트에 의지해서 벵골 호랑이, 하이에나, 얼룩말과 함께 표류를 시작한다.


뿌연 새벽빛 속에서 바나나 섬에 타고 둥둥 떠나는 것이 있었다. 성모 마리아처럼 아름다운 모습. 그 뒤에서 해가 떠올랐다. 붉은 털이 멋졌다. p. 162


오렌지 쥬스의 등장은, <파이 이야기> 중에서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이다.

표류하고 있던 파이는 나이론 망으로 묶여 있는 바나나 덩이를 올라타고 있는 오랑우탄, 오렌지 주스를 만난다. 파이의 태평양 표류는 구명보트에 얼룩말, 벵골 호랑이, 하이에나 그리고 오랑우탄을 태우고 시작된다.

그러나 다리를 다친 얼룩말과 오랑우탄은 하이에나에 의해서 죽게 되고, 하이에나는 벵골 호랑이에게 죽게 된다.


결국 파이는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단 둘이서 표류한다. 자그마치 태평양에서 227일간. 파이는 긴 표류 시간만큼 많은 사건을 겪게 된다. 육식을 하지 않는 파이는 살기 위해서 생선을 먹기 시작하고, 벵골 호랑이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 먹이를 조달하고 급기야 조련까지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목숨을 건.


지옥에서 불멸을 두려하는 건 모순이라던 파이. 그는 227일간 리처드 파커와 함께 표류한다.

파이는 리처드 파커와 함께 폭풍우, 무풍지대를 지나 한 섬에 도착하게 된다. 그 섬은 신비로운 곳이었다.  

이 부분은 영화로 봐도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그 섬에서 더 머무를 수 없게 된, 파이는 다시 벵골 호랑이를 데리고 표류하고 결국 멕시코의 한 해변가에서 227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 두 번째 이야기- 믿기 쉽지만, 설명이 어려운.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현상에 대해 시각화, 객관화 시키려고 만 한다.


"침춤 호"의 생존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일본 운수성 소속 해양부에서는 두 명의 직원을 파견한다. 그들은 파이에게 배의 침몰 원인을 듣고자 한다. 그러나 파이는 침몰 원인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나나는 뜨지 않는다던 그들은 바나나가 뜬다는 것을 보고도 첫번째 이야기는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보고도 말이다.


우린 눈으로 보는 것만 믿습니다. p. 404

그들은 파이의 첫 번째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파이의 벵골 호랑이와의 표류, 신비로운 섬, 표류 중에 만난 남자 이야기를 믿지 않자, 파이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도쿄 도심에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야생 동물이 살 거라고 말이다. 도쿄를 거꾸러 뒤집어 흔들면 온갖 동물들이, 오소리, 늑대, 보아 구렁이, 도마뱀, 악어, 해우, 표범 등 우수수 떨어질 거라고. 그러나 두 직원은 설사 그렇게 도쿄에 야생 동물들이 숨어서 산다고 해도, 파이의 표류기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단순한 것도 못 믿는다면, 왜 살아가고 있죠? 사랑이라는 건 믿기 힘들지 않나요?" p. 410

그럼에도 믿지 않는 그들에게, 파이는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이야기에는 벵골 호랑이도, 오랑우탄도, 얼룩말도, 하이에나도, 표류하다 만난 남자도 그리고 신로운 섬도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는 이렇다.

배가 침몰하고, 네 명이 살아났다. 어머니는 바나나 덩어리를 타고 구조되었고, 배에는 요리사와 다리를 다친 선원이 타고 있었다. 요리사는 다리를 다친 선원의 다리를 잘라 낚시 밥으로 이용하였다. 결국 선원은 죽게 되고, 요리사의 행동에 화가 난 어머니는 그와 다툼을 벌인다. 요리사는 선원에 이어 어머니까지 죽였고, 파이는 그런 요리사를 죽이게 된다. 이 끔찍한 이야기를. 두 직원은 믿는다. 현실적이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리를 다친 얼룩말은 다리를 다친 선원이 되었고, 바나나 덩이를 타고 나타난 오랑우탄은 바나나 덩이를 타고 구출된 어머니가 되었고,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죽였던 하이에나는 요리사가 되었다. 그리고 벵골 호랑이는 파이가 되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야기이다.


❖ 신의 존재는 믿음의 문제이다.


조사를 마친 운수성 직원에게 파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럼 말해보세요.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든 여러분으로선 상관없고, 또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증명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묻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요, 동물이 안 나오는 이야기요?" p. 435


파이의 질문에 그들은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가 더 낫다고 말한다. 더 현실적이고 끔찍하리만큼 사실적인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두 번째 이야기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이야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비현실적이었지만, 모든 것이 설명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신은 믿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바나나는 뜨지 않는다고 말하던 그들에게 파이는 직접 바나나를 띄어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본 것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눈으로 보는 것만 믿는다고 말한다. 보고도 믿지 않으면서 본 것만 믿는다는 것은 믿기 않겠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신을 만나는 것은, 신의 존재를 느끼는 것은, 극한의 상황에서 가능할 것이다. 신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때 말이다. 신의 도움으로 227일간의 표류를 끝낸 파이에게는 신의 도움이 필요 없었을 테다.

나는 안간힘을 쓰다가 모래사장에서 쓰러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완전히 혼자였다. 가족도 없는데 이제 리처드 파커도 없이 혼자가 되어버렸다. 신마저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신도 없었다. 보드랍고, 단단하고, 드넓은 이 해변은 신의 뺨 같았고, 내가 거기 있자 어디선가 두 눈이 기쁨으로 번득이고 입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p 390


우리는 신화의 시대에서 철학의 시대 그리고 종교의 시대를 거쳐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학의 범주 안에서 신은, 우리가 만든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과학 또한 언젠가는 다른 무언가에게 자리를 내줄 날이 있을 것이다. 나는 첫 번째 이야기를 믿는다. 오랑우탄이, 뱅골 호랑이가, 얼룩말이, 하이에나가, 식인 섬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과학이 아니라 신념이자 믿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두 가지 이야기 중에서 어느 이야기가 마음에 드는지 그 물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오랑우탄이 엄마, 바다에서 표류하던 프랑스 맹인은 파이의 죄의식, 호랑이는 파이다, 여러 가지 정답을 찾으려고 한다. 얀 마텔은 어느 이야기가 마음에 드는지 묻는다. 책 속의 상징성이라든지, 숨겨진 의미를 찾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건 문학 평론가들이 할 일이고, 우리는 둘 중에서 마음에 드는 이야기만 고르면 된다.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간에 둘 중에서 무엇이 마음에 들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파이 이야기는 문고판과 삽화가 들어간 양장본 두 종류가 있다. 가격은 당연히 후자가 더 비싸다. 문고판을 사서 반 이상 읽다가, 갑자기 나를 찾아온 고마운 사람에게 선물로 그 책을 주고 난 다음, 다시 일러스트판(양장본)을 구입해서 읽었다.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확실히 그림이 들어간 책이 더 재미있고 읽기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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