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27일
미국에 온 지 300일째 되는 날 _ (지금은 불체 중)
이틀 전 5월 25일 조지플로이드 George Floyd라는 한 흑인이 위조지폐를 사용하다가 신고를 당했고 출동한 백인 경찰에게 8분가량 무릎으로 목을 눌려 살해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참 바람 잘날 없는 미국이다. 미네소타주에서 벌어진 사건이지만 여기 뉴욕까지 근 이틀간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내일은 대규모의 시위가 있을 거라고 일층 마트의 문들을 전부 닫아걸라고 지시를 받았다. 토네이도 예보가 있는 날이 아닌 이상 일 년 내내 활짝 열려있는 이 문들이 닫히다니, 토네이도만큼이나 심각한 사태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아직 코로나 백신은 나오지 않은 상태이고 록다운을 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언제 다시 오픈한다는 예고도 아무 대책도 없는 상태이다. 얼마나 심각한 전염병인지 아무도 아는 바가 없으니 그저 거리 두기를 실시하고 집안에 갇혀있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는 이 시국에서 대규모 시위라니!
뉴욕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집회나 행진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마치 바이러스 전파가 시위기간에는 잠시 중단이 되기라도 하는 듯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고 소리를 지르면서 행진할 것이고 거리 두기는 당연히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그 이후의 전염병 여파는 또 얼마나 커질지 그 누가 감히 예상할 수 있으랴.
이 글로벌 팬데믹 사태에 시위에 나갔다가 자기 목숨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어떤 가치에 이토록 목숨을 거는 것일까.
인간은 무엇에 분노를 느끼는지 생각해 본다.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이 사태만 놓고 봤을 때는 인종차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닌 원래 갖고 태어난 것으로부터 차별을 받을 때, 인간은 불공정하다고 느끼고 이에 적극적으로 분개하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인종, 국적, 외모, 장애, 나이, 성별, 부모, 모국어, 계급... 등이 포함될 것이다. 이 조건들은 모두 나의 피땀이 배인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태어나 보니 나의 부모님, 태어나 보니 이 나라, 태어나 보니 이 연도, 이 외모, 이 성별, 이 신분, 이 질병을 갖게 된 것이기에 이 조건들로부터 부당한 차별을 당했을 때 자신의 존재 자체가 거부당한 느낌을 받고 목숨을 걸고 그 부조리에 맞서는 것 같다.
이는 단지 직접 당했을 때뿐만이 아니라 타인이 차별을 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도 해당된다. 적어도 그대가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말이다.
반대로 공평한 세상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미 갖고 태어난 그 어떠한 조건들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꿈을 노력한 만큼 실현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정의로운 사회라 느끼고 다양한 사람들 간의 모순이 감소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 이상 어느 국가, 그 어느 집안의 자식으로, 나이 얼마 먹은 어느 성별로 존재하지 않기 위해, 그 굴레들을 벗어던지고자 온 세상 다양함이 공존하는 뉴욕으로 이주를 왔다. 아직 이곳도 갈길이 멀지만 적어도 더 이상 구직활동에 있어서 나이와 성별을 묻는 일이 없어졌고, 사람을 사귈 때 나이와 학벌과 학번을 묻는 일이 없어졌고, "느그 아버지 뭐 하시니"를 묻는 일이 없어졌다.
일단은.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