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04일
미국에 온 지 400일째 되는 날 _ (여전히 불체 중)
나는 씀씀이가 헤픈 편에 속한다. 적어도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렇게 서류미비자로 살아보기 전에는 신용카드를 당연히 발급받아서 쓸 수 있었고(사실 은행통장을 열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직장동료들이나 대학동기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맛집에 술집에 무리 지어 다녔으니 월급이 남아돌질 않았다.
그나마 모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연말 보너스조차 일 년 내내 고생한 자신을 가엽게 여기어 “대확행”(크고 확실한 행복)에 쏟아붓다 보니 알뜰살뜰 돈을 모으면서 산 역사가 나에게는 없었다.
그것이 불과 일 년 전인데 지금 내 삶은 많은 면에서 달라져 있다. 해외생활인데 월세가 나가지도 않고 교통비가 나가는 것도 아니다. 식사는 주변 식당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으므로 마트에서 산 식재료들로 싸게 집밥으로 해결한다.
보험을 아예 들 수 없는 상태이니 보험료가 나가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다행히 건강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 유산소 운동은 길에서 조깅으로 해결하고 무산소 운동은 무게가 각기 다른 동전박스를 사용해 원시적으로 해결하다 보니 오로지 한 달에 110불인 전화비만 고정지출이다.
내 삶에 이렇게 지출이 없던 적이 없었다. 이 기회에 나중에 집을 살 목돈을 한 번 마련해 보기로 결심했다. 줄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줄여보고 소확행이니 YOLO니 잠시 나는 그런 단어들을 들어본 적 조차 없는 사람처럼 살아보기로 정신머리를 고쳐 먹었다.
돈을 펑펑 써오던 사람이 어느 한순간 깍쟁이가 되기란, 일평생 폭식을 해오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소식가가 되는 일과 비슷하다. 늘어난 위는 늘 허기가 져 있을 테지만 식량은 제한이 되어 있으니 “나는 배가 고프지 않다”라고 생각을 고쳐먹든, 영어 비속어로는 행그리라고 하는데 Hangry (hungry + angry) 늘 배고픔에 짜증이 나 있든 그 무엇이 되었건 간에 그리 편한 상태만은 아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부리는 유일한 사치가 있다면 아보카도를 사 먹는 일이다. 아보카도는 다른 과일보다 조금 더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값어치에 비해 체감상으로는 더 고급져 보이는 과일이다.
롤초밥에도 아보카도가 약간 올라가면 가격이 더 비싸지고, 샐러드에도 아보카도가 추가되면 부르는 것이 값이 된다. 명란 밥에도 아보카도를 얹는 순간 고급진 음식으로 탈바꿈된다. 그러니 아보카도를 사서 나의 집밥에 추가한 다는 사실은 왠지 스스로의 웰빙에 신경 쓰는 행위 같고 고급진 식탁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아보카도는 나에게 어린 시절 자랄 때에는 본 적이 없고 근 몇 년간부터 보기 시작한 과일이다. 마트에서 구매할 때에는 항상 연녹색의 딱딱한 아보카도를 고른다. 며칠 동안 식탁 위에서 익혔다가 먹어야지 다짐하며 짙은 녹갈색이 되기를 고대하는 시간이 뒤따른다.
하지만 늘 그러다가 먹는 시기를 놓쳐 버린다. 먹으려고 반으로 잘랐을 때는 항상 신선도가 많이 떨어진 물렁한 아보카도가 식탁 위에 곱지 않은 색깔을 머금고 놓이게 된다. 귀한 것이라고 아끼고 아끼다 보니 정작 최적의 시기를 놓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치 화장품 가게에서 샘플을 받으면 나중에 여행 갈 때 써야지 하고 보관해 두었다가 일 년에 기껏해야 한두 번 가는 여행에는 정작 써먹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고로 화장대에는 유통기한을 모를 샘플들이 잔뜩 쌓이게 되고 나중에는 그저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된다.
그제는 아보카도를 반으로 잘라서 반을 남겨 지퍼백에 넣어 냉장보관해 두었는데 어제 열어보니 밥맛 떨어지는 짙은 갈색으로 변해 있어 먹지 않고 아까운 대로 버렸다.
오늘은 대충 한 다섯 번째로 상하기 일보직전인 검푸레한 아보카도를 먹었다. 이런 미련한 짓을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이제는 딱 마침 잘 익은 짙푸른 아보카도를 날짜에 맞추어 먹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더 이상 구매하지 않을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