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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 빛 Aug 12. 2023

너는 어디서 왔니?

-글을 마치며-


첫 두 달은 구독자조차 없었고 그러다 삼 개월 째부터는 "감히 글을 쓰냐, 너의 집으로 당장 돌아가라."는 이메일을 하루에도 몇 통씩 받아 봤고 어쩌다 몇 주 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을 때면 "별일 없이 잘 지내시죠?"라는 걱정 어린 이메일도 받아봤다. 예상치 못한 따뜻한 댓글에 눈물이 찔끔 나오는 날들도 있었다.  



해외에 사는 누군가의 서류 미비자(undocumented immigrant)였던 시점으로부터 합법체류로 전환되기까지의 과정을 쓴다는 것, 물론 위험천만한 시도였음을 잘 인식하고 있다. 온 세상 곳곳에 서류 미비자들이 무수한 사연을 품고 살아감에도 쉽사리 이 삶의 형태에 대해서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다시 한번 본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장소, 이름, 날짜는 개인의 사생활 보장의 이유로 사실과 상이할 수 있음을 알리는 바이다.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참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면서 이것 또한 이 글을 시작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 모두가 천편일률로 동의하는 주제였다면 과연 공개 글로 남길 이유가 있었을까.



글 몇 편으로 오랫동안 존재해 온 서류미비자들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들에게도 인권이 있음을, 그들도 누군가의 귀한 친인임을, 해외에서는 병원조차 쉽게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향살이를 택하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이 세상에 존재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이 글은 사명을 다 한 것이다.



약간 더 욕심을 내 본다면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어쩌면 의지할 곳 없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감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스스로를 존중하라고, 존재 자체만으로 불법인 인간은 없다고,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아울러 주변에 이민 2세, 3세들이 증가하고 있고, 아직도 "너는 진정 어디서 온 거니? (Where are you really from?) 너네 집으로 돌아가라 (Go back to where you came from)."를 공격이랍시고 해대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널려 있어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진정한 내 집은 어딘가?"에 대한 혼란이 오는 사람들이 있음을 느낀다.



내가 어디서 왔고 내 집이 어디냐고? 글쎄다. 내가 애초에 선택할 수 조차 없이 나에게 주어졌던 그 요소들을 그토록 신경 쓰며 살아가야 하나 싶다. 그리고 꼭 자기가 태어나서 원 가족과 같이 살던 그 집만이 내 집인 것은 아니다. 월세든 자가든 자국이든 타국이든 자기가 살고 있는 이곳이 내 집인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혼란스럽지도 않고 출생지로부터 내 정체성을 찾고 싶지도 않다. 그저 오늘날 요리를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자체가 나의 정체성이다.



중식, 한식, 양식 중에 어떤 요리를 즐겨하는지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남편과 스스로와 지인들에게 내 손으로 만든 정성이 담긴 음식을 대접하는 기쁨을 즐길 뿐이다.



독일인이어서 필라테스를 하는 것도 프랑스인이어서 테니스를 즐겨 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운동이 끝난 이후의 뿌듯함, 약간의 근육통, 그것을 완화하기 위한 따뜻한 물의 샤워, 약간의 샐러드와 조금 과한 단백질 보충, 이런 것들을 사랑해서 운동을 한다.



물론 신토불이를 지향하는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 또한 중요하고 필요하다. 다만 타지생활의 노하우를 공유해 보자는 취지로 긴 글을 마치며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추가하는 것뿐이다.   



"어느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누구의 자식"에서 내 정체성을 찾지 않고 지구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현존하는 오늘의 나로부터 정체성을 확립했더니 어디를 가든 내 "집"같았고 한편으로 "집"을 떠나도 향수에 젖어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순간들이 오지 않았다.



<이 목표만 이루어지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를 생각하며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들조차도 자신의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목표를 이룬 후 "집"에 돌아간다고 한들 그곳은 내가 떠나왔을 때와 더 이상 같은 곳이 아닐 것이다. 그곳도 그곳 나름의 변화를 매 순간 겪고 있고 나 또한 그곳을 떠나올 때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했을 때 타지의 삶이 그립지 않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지 않은가. 매정해 보일지 몰라도 해외생활에 최적화되었다고 할까. 그리움에 사무치기보다는 현재를 온전히 사랑하기를 택했다.



"너의 집은 어디니?"를 묻는 호기심 많은 저 사람에게 반문해 본다.



"그대가 내리는 집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The best art divides the audience. If you put out a record and half the people who hear it absolutely love it and half the people who hear it absolutely hate it you’ve done well. Because it’s pushing that boundary. If everyone thinks “Aw that’s pretty good,” Why bother making it?"
 
                                                                                                                                         -Rick Ru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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