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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 빛 Aug 08. 2023

미국에서 첫 주택 마련하기

2022년 4월 1일_미국에 온 지 974일째


내 꿈의 동네였던 롱아일랜드 시티(Long island city)로 남편과 함께 이사를 와 꿈같은 나날을 보낸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넘어 렌트 만기일을 앞두고 있었다. 재계약을 하든지 새로운 곳을 찾든지 하루빨리 결정을 지어야 했으므로 퇴근 후에는 한동안 집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2022년 2월에 접어들자 코로나 팬데믹도 슬슬 막을 내리고 있었고 "탈 뉴욕"을 했던 뉴요커들이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고 있는 추세였다. 고로 더 이상의 말도 안 되는 월세 가격 할인행사는 어디에서도 진행되지 않았다. 어제와 달라질 바가 전혀 없는 공간에 다음 달부터 매 달 861달러씩 추가로 지불하고 거주하려니 약간, 아니 많이 억울한 감이 들어 과감히 미련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새로 찾은 일자리는 뉴저지주에 있었으므로 뉴저지 주로 이사를 가는 것도 고려사항에 넣었다.



전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부동산 자격증 공부를 해둔 상태에서 올해에는 집을 찾다 보니 덜 막막하고 사기를 당할 위험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역시 자기 머릿속에 집어넣은 경험과 지식은 그 누가 함부로 빼앗아 가지 못한다.



침실이 따로 없는 10평 남짓한 원룸(Studio)에서 적어도 침실이 하나는 딸린 원 베드룸 월세방으로 이사를 가려니 매달 삼천불 전후로 결코 만만한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이 돈이면 집을 사고도 남겠는데?" 월세방을 찾다가 우연히 남편에게 던진 말이었는데 내가 내뱉은 말을 스스로 곱씹어 보니 (그래, 집을 사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싶었다.



하여 월세방을 물색하던 웹사이트(https://www.zillow.com/)에서 바로 렌트(Rent)가 아닌 구매(buy)로 검색 조건을 바꾸어 집 사냥(House Hunting)에 나섰다. 잘 따져 보니 남편은 재향군인(Veteran)이라 선금(Down payment)이 없이도 대출을 구할 수 있었다. 또한 일반융자(Conventional Loan)가 아닌 군인 주택 보증 융자(VA-Loan)를 받을 수 있어 이자율도 더 낮았다.



안 그래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기준금리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태인데 군인이었다는 이유로 더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 준단다. 집값이 좀 오르긴 했지만 그것 빼고는 완벽에 가까운 이 조건에서 머뭇거리다가 시기를 놓쳐버린다면 언제 또 집을 사나 마음이 갑자기 다급해졌다.



지금 같이 주택 구매 시장의 성수기일 때는 융자 사전 승인 편지(Pre-approval letter)를 오픈 하우스에 들고 다니면서 집을 봐야 한다고 배웠던 기억이 나 최우선 순위로 그 편지부터 대출 은행에서 전달받았다. 이 편지는 남편의 개인정보와 은행잔고 및 신용상태를 기준으로 "이 고객에게 우리 은행에서는 이 정도의 이자율로 이만큼의 돈을 뀌어드릴 수 있으니 그대의 집을 좀 보여드리고 믿고 파십시오."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하여 집을 파는 사람(Seller)도 집값을 지불할 조건이 되는 구매자들에게만 집을 보여주고 집을 구매하려는 사람(Buyer)도 자신의 능력치에 맞는 집만 골라가며 방문할 수 있으니 양쪽 모두에게 시간절약을 도와주는 효과적인 서류이다.



오픈하우스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났을 때 그 편지를 판매자 측 중개인(seller's agent)에게 넘겨주고 집주인의 답변을 기다린다. 물론 집주인이 꼭 나의 제안을 받아 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집주인도 편지를 제출한 여러 사람들 중에서 과연 누구에게 자신의 집을 판매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



혼자 산다는 이 금융맨에게 팔지? 갓 태어난 아기가 있다는 그 젊은 커플에게 팔지? 갓 결혼했다는 저 재향군인에게 팔지? 복잡한 은행절차 없이 현금을 계좌이체 해준다는 퇴직한 노인에게 팔지? 그것은 전적으로 집주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중동에서 열렬히 군복무를 하다가 귀국 후 결혼 하고 이제 이 집을 사서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우리의 눈물겨운 호소가 먹히지 않았는지, 자그마치 편지를 제출하고 세 번이나 거절당했다.



거절은 늘 아프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편지를 다시 써야 하나, 웃돈을 얹어 주고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하나, 한 달짜리 단기 월세라도 구해서 천천히 더 찾아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우리가 세 번째로 거절을 당했던 뉴저지 주의 큰 마당이 딸린 집에서 연락이 왔다. 현금으로 산다던 다른 구매자와의 계약이 파기되어 그다음 순위였던 우리에게로 기회가 온 것이다.



아직 집을 다 구매한 것도 아닌데 우리에게 팔겠다는 집주인의 승낙만으로도 얼마나 기쁘던지, 수많은 절차들이 아직 한참 남았다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우리는 그저 마냥 입을 귀에 걸고 있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지금 살고 있는 월세방 만기일까지 25일이 남았으므로 그 안에 정신 차리고 모든 대출절차와 집점검들을 속전속결로 진행해야만 했다.



재향군인 융자라 물론 선금이 필요 없기는 했지만 매 달 나가는 이자를 조금이라도 더 낮추기 위하여 우리 둘의 자금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합쳤다. 여윳돈은 일단 집을 사고 나서 그때 다시 처음부터 모으자는 마음으로 남김없이 집에 쏟아부었다. 다소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다행히도 집은 25일 만에 무사히 구매할 수 있었다.



2022년 4월 1일 만우절날 이른 아침 타이틀 에이전시(Title Agency)를 방문해 마지막 클로징 절차(closing)까지 마치고 집 열쇠를 넘겨받았다. 거짓말 같이 우리 둘에게도 자가가 생겼다!



가장 안전한 길이 가장 위험한 길이라고 했던가. 만약 내가 대기업 초봉에 만족해 이곳으로 훌쩍 떠나는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직 내 힘으로 한국에서의 자가 마련은 지금 이 시점에서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눈 딱 감고 넓은 세상에 한 번 덤벼 봤더니 974일 만에 나에게도 자가가 생기고 주민등록 번호(SSN)가 생기고 가족도 생겼다.



이삿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 도착하기 전 둘이서 텅 빈 마루 바닥에 앉아 어디에 무슨 가구를 놓을지, 페인트는 무슨 색을 칠할지, 공사는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마당에는 무얼 심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동안 이리저리 옮겨 다녔던 월세방에는 제약 사항들이 많아 내가 좋아하는 키가 큰 화분도 동물도 키워 볼 엄두를 못 냈는데 이제는 집천장까지 뻗은 화분도 키워보고 반려동물도 키워보고 페인트칠도 스스로 해보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둘이서 해 나갈 예정이다.



아. 이 지구에 우리 둘의 이름으로 된 땅이 생기다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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