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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 빛 Jul 21. 2023

영원히 미국에서 살아 볼까요?

2021년 늦가을

자칭 "뉴욕 최대 한인 부동산"이라는 나름 잘 알려진 회사에서 사기를 당하고 남편과 나는 분노했다.



남편은 나에게 당장 영주권부터 신청하고 미국땅에서 당당히 살면서 제대로 된 직업을 되찾고 좌절하지 말기를 바랐고 반면에 나는 영주권 신청에 있어서는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얼마 전 결혼 하기를 결심할 때와 비슷한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어차피 한 번은 신청할 것을 뭘 그리 망설이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신청하는 나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혼인신고를 하자마자 영주권 신청을 시작하게 되면 너무 섣부른 것이 아닌가, 시댁에서는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순수한 우리의 사랑이 영주권의 수단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영주권 신청을 미뤄왔다.  



그러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자 더 이상 이 상태로 시간낭비 할 수는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시부모님에게 SOS를 요청했다. 미국에서는 성인이 된 자식의 결혼 생활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집이 드물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의상 시부모님과 대화를 먼저 나누고 나서 영주권신청을 진행해야 할 것만 같아 오랜만에 영상통화를 걸었다.



"어머니, 저희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제가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을 하면서 삶을 잘 꾸려 나가기 위해 영주권 신청을 시작하려 합니다. 어머니는 이 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들이 걱정되시거나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신청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까요?"



누가 쿨한 시어머니가 아니랄까 봐 시어머니는 대뜸 "우리 아들이 시민권자가 아니었어도 계속 만났을까요?"라고 정곡을 찌르셨다. 그런 가정은 미리 해본 적이 없지만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도 당연한 얘기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 사람이 시민권자이든 나 같은 서류미비자이든 그저 이 사람이라면 세상 어디에서 만났더라도 결혼까지 결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 안되면 둘이서 같이 미국땅을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저 이 사람이면 된다는 확신이 처음부터 있었다.



시어머니께서 다시 물으셨다. "만약 우리 아들이 설빛씨가 태어난 나라에서 불체자 신분으로 살고 있다가 설빛씨를 만났다면 설빛씨는 그런 아들을 그저 보고만 있었을 것인가요?"



"그건 말도 안 되죠. 당연히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남편이 우리나라에 정착할 수 있게 도왔겠죠."



"나는 설빛씨에게 이 이상으로 물어볼 질문이나 해줄 만한 조언이 없네요."



짧고 굵은 시어머니와의 통화가 끝났다. 어쩌면 나도 이 모든 답들을 굳이 시어머니의 질문을 거치지 않고 이미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그렇게 나쁜 마음을 먹고 오직 내 목적 달성을 위해 남편을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시댁에서 한 번 더 확인받고 싶었던 것일 게다.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변호사에게 의뢰를 하지 않고 스스로 영주권신청을 진행해 보기로 결정했다. 비용절감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누군가의 변호를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의 결혼에는 거짓이 없음을 증명하려는 오기가 발동해서였다.



신청 전에는 늘 그래왔듯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는데 정작 부딪혀 보니 미국 영주권 신분조정(Adjust of Status)도 하늘의 별따기 같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사건은 아니었다. 다만 신청서들을 작성함에 있어서 남편의 현재까지의 경제 상황, 지난 5년 동안의 거주지, 시부모님의 자세한 인적사항 등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까지 전부 기재를 해야 했으므로 시댁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행운스럽게도 그들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이민국 웹사이트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있는 사실 그대로 작성 후 등기우편으로 전부 발송하고 나니 일주일 만에 접수증과 지문날인 요청서(ASC Notice)가 우편물로 도착했다. 물론 지문등록을 빨리 한다고 해서 영주권을 더 빨리 받는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지문등록을 하러 이민국을 방문하던 그날은 우중충하게 내리던 늦가을 비마저 낭만적인 보슬비로 보일 만큼 모든 발걸음이 설레고 황홀했다. 



그리고 지문을 찍고 나오는 길에서 각오를 달리 다졌다. 이제는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꿈을 꿔야 한다. 그동안 이래 저래 "신분"이라는 벽을 마주할 때마다 몸은 힘들었지만 어쩌면 정신적으로는 더 편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도피처 같이. 가능성에 중독된 사람같이. "내가 제대로 된 신분이 아직 없어서 그렇지 신분만 해결이 된다면 나도 얼마든지 부유하게 잘 살 수 있을 거야."라고 한계치를 설정하고 그 울타리 안에서 꿈꾸기를 미뤄왔다. 



이제 곧 울타리는 무너진다. 생각보다 영주권 추진에 박차가 가해졌기 때문이다. 항구에 정박하여 있을 때가 가장 안전했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의 이유는 아니지 않던가. 나는 선장이고 배는 곧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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