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 <82년생 김지영> 단평 : 그들이 말을 할 때

다큐멘터리 같았던 원작, 등장인물이 '입을 여는' 과정으로 영상화되다

by 성상민

2016년에 발간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0년대 후반 한국의 소설을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등극했다.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은 소설의 자체적인 평가를 넘어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도 그러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소설은 처음 나오는 순간부터 주목과 함께 비평적인 차원의 접근도 함께 받았다. 비평집 <#문학은_위험하다>에서 정리한- <82년생 김지영>이 발표되는 순간 몇몇 평론가들이 보였던 당황스러워한 반응 같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설적 문법을 택하는 대신 무척이나 색다른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본래 MBC <PD수첩>이나 <불만제로> 등의 작가로 활동했던 이력처럼, 작품의 전개는 작품의 주인공 '김지영'이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으며 과거에서 서서히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에 '김지영'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쉽게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을 다양한 통계나 사례를 곁들인 '외부적인 접근'과 함께 버무리면서 전개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삽화가 있지 않은 이상 철저히 '문자적'인 매체지만, 조남주의 선택은 마치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의 자막이나 통계 그래프처럼 제3자의 시점에서 작중의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아픔에 계량화되거나 정량화된 수치를 통해 드러내었다.


이러한 서술 방식에 많은 독자들은 열렬히 호응하고, 다시 적극적으로 작품을 퍼트리는 것에 동참했다. 더 이상 책이 주된 매체가 아니고, 팔리지도 않은 시대에서 <82년생 김지영>은 100만부를 판매하며 그야말로 밀리언셀러에 등극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백래쉬'(backlash)도 번창했다. 2016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싹을 피운 한국의 페미니즘 흐름과 얽히며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페미니스트의 상징이 되었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거나 그러한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책을 읽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공격과 혐오의 꼬투리를 잡으려 애를 쓰던 이들에게도 <82년생 김지영>은 활발한 공격의 빌미가 되었다. 아이돌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이 <82년생 김지영>을 SNS에서 언급헀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라며 공격을 받았던 것처럼, <82년생 김지영>은 어떤 혐오주의자 사이에서는 낙인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82년생 김지영>은 이젠 한국의 특정 시기와 운동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은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많은 호응을 얻으며 한-일 문학 교류에 새로운 자장을 낳기도 하였다. 그리고 센세이션을 낳은 작품들이 흔히 그러하듯, 작품은 영화로 제작되는 길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소설인 <82년생 김지영>이 지녔던 독특한 질감이 영상화가 된 뒤에도 그대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서사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 작품이라고 해도, 이를 영상의 언어로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작품은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김지영의 일생을 바라보는 외부의 입장에서 당시의 상황과 작중의 문제를 해설하는 일종의 '내레이터'가 존재한다. 이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다면, 활자로서 <82년생 김지영>을 인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았다. 관객들은 작품에 몰입을 하는 대신 도리어 스크린 앞에 또 다른 장막을 만나는 듯한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영상에 어울리는 새로운 문법을 모색하며, 원작에 담겨 있던 메시지를 재해석하며 전달하는 과제를 가진 작품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영상으로 변신한 <82년생 김지영>의 모습은 어떠한가. 약 2시간 내외의 러닝타임으로 완성된 영화에 마구 플래쉬백을 통해 과거나 현재로 돌아갈 수도, 내레이션을 무한정 덮을 수도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화가 택한 방법은 개봉 이전부터 잘 알려진대로 '빙의'였다. 영화의 '김지영'(정유미)는 무척이나 견딜 수 없고 지치는 순간에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인물로 '변신'하며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작중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여성과 다른 길이다. 지영의 어머니인 '미숙'(김미경)이 가족을 위해 어린 나이부터 노년이 되어서 까지 모든 걸 참고 희생했던 것처럼, 지영이 출산과 육아로 퇴직하기 전 다녔던 홍보사의 '김 팀장'(박성연)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차별과 무시섞인 발언을 감정을 죽이고 사회성을 가득 담은 위트로 넘기려 했던 것과 달리 '다른 사람'이 된 김지영은 다른 사람의 인격과 기억을 빌려 쉽게 말할 수 없지만, 해당 상황의 불합리함에 대한 직언을 말하기 시작한다.

이는 극중 김지영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정대현'(공유)를 비롯한 주변 사람의 걱정처럼 '정신 질환'일 수도 있다. 영화가 제작되기 전에는 많은 이들이 이렇게 '빙의'를 통해 문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 쉬운 선택은 아닌지 걱정을 했으며, 공개된 작품에서도 조금은 아슬아슬한 순간이 존재한다. 그러나 영화는 지영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 '병'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병'이 아니며 꾹 닫혀 있던 입이 '트이는' 순간일수 있도록 주목하게 만든다. 지영이 어렸던 시절, 젊었던 시절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은 이후로 지영에게 다시 되돌아오고 그러한 순간에서 영화는 최대한 자연스레 인물이나 빛으로 디졸브되는 플래쉬백으로 관객을 하여금 지영의 과거를 반추하게 한다. 그리고 '다른 인물'이 되어 말을 하는 광경을 통하여 극중의 '지영'을 비롯해 관객이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을 대신해서 말하게 하는 '대리 만족'의 경험을 느끼도록 만든다. 특정한 순간과 국면에서 관련된 통계 자료나 뉴스를 꺼냈던 소설과는 전혀 다른 길이지만, 동시에 이 길은 영상의 문법으로서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 육아를 이유로 '경력단절여성'이 되고 만 김지영을 비롯해 서로 다른 시기와 처지에 놓여 있지만 젠더의 장벽과 차별에 갇힌 여성들이 정말로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를 드러내는 하나의 장치가 된다.

접근 방식이 달라지며 과거의 순간을 재현하는 파트가 길었던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현재 시점이 주된 시점이 되었다. 시점이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진 결과 원작과 다른 '축'들이 생기고, 그 축은 중심축으로 영향을 받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좀처럼 지영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대현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지영의 심리를 알아가고자 노력한다. 나이를 자꾸 먹는 순간에서도 ('김팀장'의 행동처럼 우스운 해프닝으로 넘어갔던) 단 한 번의 해프닝을 제외하면 말을 하지 않았던 미숙도 입을 열기 시작한다. 물론 이 말들과 움직임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작중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는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지영의 언니 '은영'(공민정)에게도 말을 할 수 없는 순간과 한계가 존재한다. 소설은 고정된 형태를 형성한 현재 시점에 못을 박은채 그 시점이 형성하게 된 과거를 탐사했다면, 영화는 현재 시점이 '움직인다.' 지영이 어떤 식으로든 입을 열 때 각각의 축에 놓인 이들도 변하고, 조금씩 움직인다.


이러한 변화는 결코 희망적이라 말하기 어려웠던 원작과 달리, 변화의 가능성을 남기는 움직임이다. 물론 그 변화가 어디까지나 상업적인 구조 안에서 제작된 영화 안에서, 관객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남기며 '힐링'적인 감정을 끝에는 남기기 위한 변화일 수 있다. 실질적으로 변한 것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에게는 원작과 달라진 영화의 클라이맥스와 결말이 포장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한계 지점을 고려하더라도,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수 있는 현재'에서 '어떤 식으로든' 밖으로 말을 하게 되는 움직임이 어떤 가능성을 만들 수 있을지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드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원작과는 무척이나 달라진 흐름으로 각색되었지만, 영상 언어에 걸맞는 전달 방식의 변화는 원작의 톤을 유지하는 동시에 원작이 살펴봤던 시선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2010년대 후반에 놓인 여성과 개인들이 어떤 길을 선택할 수 있을지를 살짝은 엿볼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많은 절제가 필요했다. 한국 영화에서 차고 넘치는 과잉된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면, 영화는 진지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없는 작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다. 특정한 국면마다 '인격'이 변하면서도, 그 변화에 당위성을 주기 위하여 영화의 연출은 인위적인 상황을 최대한 통제하고 절제된 감정과 분위기로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히 이끌어 나간다. 순간순간마다 다른 감정과 인격으로 변신해야 하는 정유미의 연기는 이를 도운 매우 큰 조력자이다. 쉽게 지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 자꾸 엇나가는 공유를 비롯해, 각각의 순간마다 적절한 감정과 심리를 드러낸 김미경의 연기도 주목할만한 지점이다. 신파를 낳을 수 있는 요소가 있어도, 그 신파를 단순한 과거 회귀나 가족의 중요성으로 방점을 찍는 대신 극이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영화의 연출은 인상적이다.


영화로 다시 태어난 <82년생 김지영>은 이렇게 원작에 기반을 두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동시에 2010년대 중후반 이후로 속속 등장하는 작품들과 궤를 같이하고 함께 맞물리며 흘러간다. (몇몇 장면에서는 수신지의 만화 <며느라기>가 겹쳐지기도 한다.) 문학계 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큰 파도를 일게 만든 작품에 어울리는 각색의 방식을 스스로 입증하는 동시에, 곧 2020년대를 맞이하는 한국 영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전과는 다른 길을 모색하고 어떠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하나의 시도인 셈이다. 그렇게 하나의 시대가, 하나의 움직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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