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다큐인사이트 - 웹툰제국의 탄생> 단평.

전형적인 연출의 한계에도 한국 웹툰 20년의 얼개를 살펴 나간다.

by 성상민

아쉬운 점이 아예 없지는 않아도, 근래 방송 다큐멘터리 중에서는 <모던코리아> 연작이나 <개그우먼> 같은 기획으로 꾸준히 일정하게 시대적으로 유의미한 소재를 선정하며 좋은 퀄리티를 유지하는 <다큐인사이트> 다운 작품이 등장했다. 작년 5월부터 8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전시한 <호민과 재환>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촬영이 전개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못해도 일 년 가량 기획과 제작을 거쳐 제작된 작품이라 봐야 할 것이다.

<다큐인사이트> 자체가 KBS 다큐의 새로운 전기를 만든 <88/18>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은 만큼 연출 자체는 <모던코리아>를 비롯해 <다큐인사이트>의 스타일에서 드러나는 어법을 그대로 이어나가고 있다. 나레이션은 일부 대목을 제외하면 최소한으로 이뤄져 있으며, 상당수의 장면은 인터뷰와 타이포그래피를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88/18>과 <모던코리아>에서 디자이너 김기조가 한국의 과거 시대상을 타이포그래피로 형상화했듯, <웹툰제국의 탄생>의 제작진 역시 효과음과 당대의 폰트를 통하여 한국 웹툰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20년이 결코 짧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만화를 설명함에 있어, 살짝의 모션 그래픽과 나레이션을 더해 애니메이션처럼 드러내는 연출은 완전히 독특하지는 않아도 과거의 작품들을 처음 접하는 시민들에게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하지만 서사의 측면에서는 전형적인 면모가 있다. 2000년대 초반 급격하게 전개된 한국 만화의 추락을 인터넷의 보급과 포털의 경쟁이 낳은 '웹툰 서비스'로 새로운 전기를 찾게 되고, 2010년대부터는 스마트폰/모바일의 등장과 함께 유료화 모델을 도입하며, 이젠 세계로도 널리 퍼지고 한국을 넘어 글로벌 OTT와 연계하며 더욱 확장하고 있다- 는 것이 해당 다큐멘터리의 주된 플롯인데, 물론 이 다큐멘터리가 러닝타임 50분의 단일 구성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이전 한국 만화의 문제를 대여점과 스캔본으로, 다시 웹툰의 등장과 분화-성장을 다음(현, 카카오)와 네이버 사이의 양강으로 다루는 것은 어느 정도의 단순화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상당히 많이 거칠게, 또는 전형적인 방송 다큐멘터리의 구도 형성을 위해 편의적으로 조직된 면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한국 만화의 흐름이 전환된 것을 산업적인 측면으로 짚는 것을 넘어, 작가가 놓인 위치나 권리에서는 출판만화 시기의 문제가 그대로 이어지거나 또는 다른 맥락의 결절들이 발생한 지점도 살짝이라도 짚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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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의는 없지 않다. 간략한 방송 리포트의 한 꼭지를 넘어, 한국 방송 미디어의 영역에서는 최초로 웹툰의 20년에 달하는 흐름을 어떤 식으로든 다뤄낸 측면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록 거친 구석이 있더라도, 웹툰의 초기 태동과 기반 다지기, 그리고 급격한 확장으로 이어지는 순간마다 등장한 작가들과 (강풀, 주호민과 같은 초기 데뷔작가부터 김규삼, 윤태호와 같은 기성 작가 출신의 웹툰에 도전한 작가, 그리고 <아홉수 우리들>의 김정현 같은 현재의 작가를 아우른다.) 다시 그 순간을 함께 했던 웹툰 플랫폼의 담당자들을 (네이버웹툰 김준구, 카카오웹툰 박정서) 호명하며 짧은 시간 안에 흐름을 짚는 것은 웹툰의 역사를 속성으로 파악하기에는 꽤나 도움이 되는 자료가 된다. 이재민, 위근우 평론가 등 당대의 상황에 대해 코멘트를 할 수 있는 이들을 섭외한 것도 적절한 흐름이다.

물론 시간이나 연출로 인한 한계를 완전히 지나치기는 어렵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인지하고 원하는 바를 연출로 담아냈다고 하더라도 각 페이즈(2000년대 초반의 웹툰의 '플랫폼으로서' 첫 정착 시작 ~ 2010년대 모바일 퍼스트의 도래 ~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 현재의 적극적인 국내외 미디어 프랜차이즈) 사이의 공백은 상당히 길고, 이를 메꿔주기 위해 섭외 되었을 인터뷰이는 비중이 많이 빈약하다. (하일권, 김성모, 야옹이 등) 부분적으로 '한국 웹툰이 이렇게까지 출판만화를 대체하며 빠르게 성장한 이유'를 묻는 대목이 있으나, 이 다큐멘터리가 내부적으로 잡아 놓은 구조에 치여 그다지 자세하지는 않은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라는 영상의 차원에서 한국 웹툰의 흐름들을 어떤 식으로든 짚어내며 과거의 순간들을 되돌아보고, 다시 이를 환기하는 것은 분명 의의가 존재한다. 50분이라는 시간 안에 결코 많은 이야기나 맥락을 말하기는 어렵고, 웹툰이 지니는 시대적-작품적-디지털적-산업적 흐름을 모두 깊게 들어가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간 제한' 속에서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시청자로 하여금 후속적으로 찾아보게 할 여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남은 건 그 이후 다시 한국 웹툰의 역사와 과제, 그리고 더욱 폭을 넓힌 시각과 접근으로 이어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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