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가 다루는 풍경의 역사에서 시작해, 역사와 관습이 지닌 한계를 겨누다
알렉산드르 O. 필립은 이래저래 특정 작품과 장르를 중심으로 메타적인 분석을 시도하는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든 감독입니다. <최신좀비가이드>나 <78/52> 같은 작품들이 그러하였죠. 어떤 점에서는 가이 매딘과 더불어 꾸준히 꾸준히 영화의 요소를 탐구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접근하며 때로는 비트는 '오디오-비주얼 크리틱'을 시도하는 감독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가 이번에 다룬 영역은 바로 존 포드의 서부극 영화에 꾸준히 등장하며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상징이 된 '모뉴먼트 밸리'입니다. 무척이나 황량한 붉은 황토빛의 대지에서 마치 사람이 직접 손으로 만든 듯 갑작스럽게 수직으로 솟아오른 기암괴석의 모습은 존 포드를 비롯한 많은 연출자들을 이끄는 공간이 되었고, 동시에 현재까지도 무수한 이가 찾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뉴먼트 밸리는 대다수의 미국 서부가 그렇듯 본래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던 지역을 미국 연방 정부와 탐욕에 눈이 먼 이들이 합작하여 '개척자 정신'(프론티어 정신)이라는 명목 아래 학살하고, 쫓아내며 자신들의 땅으로 만든 문제적 역사가 서린 공간이기도 합니다.
감독은 존 포드가 본격적으로 이 모뉴먼트 밸리를 헐리우드 영화 속 서부의 상징을 넘어, 미국 대중문화의 하나의 기표가 되도록 만든 전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화에서 이 공간을 어떻게 비춰왔는지를 다각도로 접근합니다. 그것도 영화 평론가의 시선뿐만 아니라 문화인류학자, 정신분석학자, 고고학자, 그리고 실제 자신의 선조가 강제로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나는 경험을 당한 경험이 있으며 본인 역시도 원주민의 권익을 위해 움직이고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이의 목소리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 갈래로 접근하는 영화 속 모뉴먼트 밸리에 대한 접근은 분석하는 이마다 제각각입니다. 모뉴먼트 밸리라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서부극을 단순한 여흥을 위한 B급 장르에서 영화 내적으로 접근해도 의미가 있는 존 포드에 대한 찬사로 접근하는 이도 있지만, 존 포드가 이 모뉴먼트 밸리를 결코 실제로는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몰입감 넘치는 서부극' 서사로, 그것도 백인 중심의 서사로 인식되게 만든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입장들은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테이킹>은 사실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실제 존재하는 공간을 영화 같은 매체는 조작적으로 재구성하며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존 포드가 모뉴먼트 밸리라는 공간을 중요한 기호로 해석하며 '풍경'(경관)을 영화의 핵심 요소로 연출에 활용한 것을 높게 평가하는 입장도, 존 포드 이래 수많은 서부극은 물론 심지어는 SF나 애니메이션 등등의 작품도 이 공간에 담긴 원주민의 역사를 쉽게 배제하는 것을 지적하는 주장도 모두 미디어가 지닌 '전달'의 힘을, '개념 정의'의 영향력을 언급하다는 점에서는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작품의 제목인 '테이킹'(taking)이 영화 용어로는 '촬영 중'임을 의미하지만 이 용어의 원형인 take가 '무언가를 취한다'는 뜻임을 생각하면 결국 이 공간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은 달라도 어쨌든 이 공간을 배경으로 촬영이 이뤄지는 이상 이 공간에 담겨 있는 역사도, 맥락도, 사람도 선별적으로 '취해짐'을 고민할 수 밖에는 없게 됩니다.
물론 영화가 상당 부분을 존 포드가 자연의 경관을 비롯한 '공간'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화 내적으로 다뤄낸 성취를 높게 평가하는 이들의 발언에 할애하듯, 어떤 한계에도 불구하고 존 포드 등이 이룩한 영화적인 성과를 쉽게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존 포드의 말년인 1970년대 배우이자 감독 피터 보그다노비치와의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사실은 철저한 의도로 보일 수 있는 장면이 '꿈보다 해몽'이거나 '본능적인 감각의 산물'일 수도 있음을 넌지시 내비추는 것처럼, 영화는 어떤 공간을 영화적으로 탁월하게 해석한 공로가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이미지의 조작과 재정렬이 다시 누군가에게는 심각하게 다가올 수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함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접근은 100년 남짓한 영화의 역사나 현대의 신화나 고전이 된 서사를 뒤흔들 수도 있겠죠. 분명 존재하는 성과 자체를 기각하는 흐름이 될 수도 있겠고요. 그러나 영화라는 장르 자체의 탄생과 발전이 기존의 주류적 분위기에 문제 제기를 하면서 시작했던 것처럼, 다시 그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움직임을 그저 거리를 두며 바라보는 대신 또 다른 단계를 모색하기 위한 흐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테이킹>은 그렇게 영화를 비롯해 현대에 세어진 어떤 신화들이나 약속된 표현들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강력한 신화 뒤에 가려진 존재들을 보도록 하는 시도와도 같습니다. 표면적으로 집중하는 초점은 자연경관인 '모뉴먼트 밸리'지만, 최종적으로 겨누는 곳은 이 경관에 서려 있는 현대 미국의 행정과 매체사의 강력한 구조이자, 이미 하나의 '정전'(canon)이 된 요소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