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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May 05. 2022

2022 JIFF, 최정문 <내가 누워있을 때> 단평.

조금은 성기고 거칠어도 기묘한 한국판 모던 고딕 여성 영화

그간 단편을 계속 연출했던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입니다. 처음 보고 있으면 쉽게 장르를 종잡기 어려울 것 같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약 이틀 동안 벌어지는 일 사이사이에 세 명의 주인공의 맥락을 꽤나 길고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보여준다고 해도 단순한 플래시백이 아니겠냐고요. 플래시백이라고 하기엔 쉽게 무시할 수 없고, 각 주인공의 이야기들은 간단히 사이드 스토리나 도구적 기능으로 치부할 수 없는 독립성이 강한 이야기의 집합을 이룹니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이미 기획 단계부터 대중성을 상당히 포기하고 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작품이었으면 무난하게 전개되었을 루트에서, 지속적으로 각 작품이 겪었던 과거사나 그 인물의 시선을 향해 구불구불 회전을 하며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표면적인 이 작품의 장르는 일종의 ‘로드 무비’입니다. 서울의 한 광고사에서 일하는 선아는 잠시 짬을 내어 고향 부산으로 내려 갑니다. 몇 년 전 갑작스럽게 사망한 친척 부부의 기일이기 때문이죠. 고향집에는 선아의 부모님과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한 집에 함께 사는 사촌 동생 지수가 있습니다. 지수는 곧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고, 선아와 함께 한 집에서 살 예정입니다. 원래 선아는 얼굴만 보고 빠르게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지수, 그리고 이들과 함께 따라가고 차를 운전하기로 한 지수의 친구 보미와 함께 여정을 떠나고, 사건도 함께 발생합니다.


줄기가 되는 사건만 보고 있으면 이래저래 전형적인 B급 서스펜스와도 닮았습니다. 여성들에게 우연한 계기로 사고가 닥치고, 겉으로 봐도 뭔가 심상치 않은 남성들이 자꾸만 접근합니다. 뭔가 불길한 일을 알릴 것만 같은 징조가 발생하는 가운데 결국 이들은 감정의 절정에서 서로를 마주하니까요.


일반적인 장르 클리셰라먼 이 과정에서 더욱 이들이 부딪치며 감정이 고조하고, 끝내 결정적 사건이 발생하는 식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길을 그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며 때로는 가스라이팅이 섞인 직장 잔혹사로, 때로는 오컬트로, 다시 때로는 LGBT 로맨스로 장르의 구심점이 이동합니다.


여기에 조금은 안타깝지만, 대사의 구성이나 편집이 성긴 것도 더욱 이 영화의 유동성을 가속화합니다. 어떤 부분은 분명 의도적인 생략 같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은 그렇게 인식하기에는 많이 어색하게 때로는 오컬트로, 다시 때로는 LGBT 로맨스로 장르의 구심점이 이동합니다. 흐름이 튀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한계를 넘어서, 이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의 연속에서 하나의 공통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면서 그 독특함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로 여성을 중심으로, 현대 한국에 대한 고딕적인 분위기와 심리를 만드는 것이죠.


세 명의 주인공은 처한 상황도, 그 상황을 감싸는 장르의 분위기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결국 자신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고, 아무리 밝은 순간이라도 그 뒤에는 긴장과 어두움을 내포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그 과정에서 메인 스토리의 배경인 아파트나 외딴 시골, 너무나도 한적한 모텔은 물론 직장, 해운대, 카페, 학교, 4컷 사진 부스 같은 공간도 긴장감을 주는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사회 경험이 많을 것 같은 사람도 자신이 놓인 한계를 의도적으로 도피하며 분위기는 가라앉고, 오히려 순수하거나 또는 영화 속에서 대사로 나오듯 “너무 멍청한” 사람이 도리어 이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연속하는 우연과 구조적 필연이 만나 세 명이 서로를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가 되어서야 이들은 서로는 물론 자신을 알고, 자신들을 덮치는 것들에도 마주할 수 있게 되지요.


그러기에 직접적인 폭력과 공포를 드러내지 않아도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딘가 고답적인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엔딩의 분위기는 그 씬만 보자면 어딘가 전형적이지만, 엔딩에 이르는 과정까지도 이 긴장을 놓지 않으며 불안은 쉽게 끝나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 작품 제목의 모티브가 되었을 미국 고딕 소설로 유명한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의 참 쉽게 벗겨내기 어려운 물때처럼 진득하게 삶과 인물에 달라 붙은 축축한 분위기처럼, <내가 누워있을 때>는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네오/모던 고딕’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정범의 <열혈남아> 등에서도 느와르를 비트는 방식으로 시도한 것이지만, <내가 누워있을 때>는 남성 주인공을 탈각하고 현대 한국을 사는 여성 개인이 쉽게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중심으로 이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조금은 성기고 거칠어도, 이 분위기의 형성은 너무나도 독특해 하나의 발견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에요. 좀 더 이야기와 편집을 가다듬어 나올 앞으로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하게 하는, 인상적인 분위기의 첫 장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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