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결코 동등하지 않다
* 작품은 11월 2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2018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 좋은 삶>에서 워크숍 책자 비치와 함께 상영된다.
리슨투더시티의 작업은 꾸준히 ‘아카이브’와 ‘콜렉티브’의 연속이다. 퍼포먼스, 영상, 독립출판물, 영화제, 독립서점 등 행보는 쉽게 하나로 통칭하기 어려워도 그 ‘큐레이션’의 경로는 일정하다. 도시를 배경으로, 쉽게 포커스에서 사라지는 이들을 중심에 놓고 기록하며 보존한다. 동시에 ‘개발’로 인해 불안정해지는 환경과 공간, 밀려나는 사람들이 초점에 놓였다. 근래 공개되었던 <도시 목격자>와 <끝나지 않은 편지>를 이를 메타적으로 적용하며 역사의 흐름과 동시성을 함께 질문하는 시도였다.
2018년 중후반에 이르러 리슨투더시티는 ‘서울미디시티비엔날레’ 기획단의 의뢰를 받고 다원적인 작품 하나를 기획하게 되었다. 비엔날레의 컨셉이 그리스 아테네의 공론장 ‘아고라’를 내세우고 있기에, 다수의 작업이 ‘워크숍’의 과정과 결과물을 통해 생산되었다. 리슨투더시티의 작업도 ‘워크숍’을 통한 외부와의 협업으로 제작되었고, 그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엄밀히 따지면 영상은 워크숍의 과정이자 결과이고, 함께 제시된 출판물은 공동 협업의 산물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허나 이 작품의 ‘워크숍’과 함께 비엔날레에서 공개된 ‘워크숍’ 작업을 쉽게 같다고 볼 수는 없다. 원래 그룹에 속한 작가들의 협업과 토론을 통해서 다양한 행로를 펼쳤던 작가집단은 촉박하게 주어진 작업 시간 속에서도 최대한 자신들이 견지하던 시간을 연속하여 드러내고자 한다.
이번에 리슨투더시티가 고른 주제는 ‘재난’이다. 그리고 한국에 그간 ‘없을 것’이라 쉽게 여겨지던 ‘지진’이다. 한국이 지진안전지대라는 환상은 포항과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완벽하게 무너지게 되었다. 잔잔해 보이던 땅이 흔들리자 이렇다 할 시각을 갖지 못했던 건물들은 대책없이 붕괴했고, 사람들은 공포감을 느꼈다. 얼핏 보기엔 이 재난은 지진 발생지에 산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은 재난이지만, 그렇지 않다.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쉽게 거동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을 비롯해 노약자들은 같은 수준의 재난이라도 전달되는 충격과 강도는 결코 같을 수 없다. 리슨투더시티의 작업은 이 ‘재난의 상대성’에 초점을 맞춘다.
영상은 포항 지진 당시 상황을 겪은 노약자-장애인들/장애 인권 영역의 활동가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와 실제 지진 피해를 입어 외-내로 붕괴된 현장의 모습을 교차하여 전개한다. 원래부터 사회적 소수자에게 빈약한 시스템은 재난 상황이 되자 더욱 최악의 형태로 다가온다. 활동보조인은 장애 등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제공되고, 장애인 콜택시의 수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재난이 일어났고 알 수 있음에도 피할 수가 없다. 피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실현할 수 없다. 재난이 발생하지 않은 ‘정상 상태’에서도 움직임은 ‘재난’과도 같은데, 실제 재난이 오는 순간 재난의 강도는 더욱 상승한다.
재난 이후 제작된 작업은 결코 재난을 실시간으로 재현할 수 없고, 블록버스터와 같은 문법으로 재난을 옮긴다고 하여 당시의 심리를 재현할 수 없다. 재현과 경험을 동시에 전달하기 위해 리슨투더시티는 ‘재난 이후’ 파괴된 모습과 경험의 인터뷰를 교차한다. 그리고 그 리듬의 사이에 부재한 공동체의 상과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활동가의 이야기를 삽입한다. 더 이상 포항의 지층은 흔들리지 않지만, 강한 충격으로 흔들린 장면들은 강도의 세기를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겉으로는 웃으면서 말하지만, 쉽게 대피가 어려운 상황을 들려주는 발화는 재난 영화 이상으로 재난이 현실에 다가오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곤란함을 고민하게 만든다.
영상이 경험을 말한다면, 출판물은 이 경험을 토대로 두 차례의 사고 실험과 실제로 이 사회에 필요한 사항들을 전달한다. 어느 가상의 시간대, 갑작스레 서소문의 서울시립미술관 건물이- 또는 노란들판장애인야학 건물이 지진 속에 놓인다면 그 안의 구성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두들 지진 속의 무력감, 갑작스레 발생한 재난 속 생존 욕구를 읊지만 공간이 달라지기에 사고 실험의 층위도 달라진다. 미술관 사람들의 사고 실험이 사변적인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면, 장애인 야학의 사고 실험은 철저히 자신들의 대피 방법 서술이 강조된다. 이미 그들은 자신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안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술관 워크숍의 9번 사례가 ‘3층에서 휠체어를 탄 성인 남성’을 발견함을 말하고, 그 안에서 드러날 딜레마를 말함을 생각하는 지점에서 재난은 결코 동등하지 않음을 극명히 드러낸다.
지진 이후 방송에서 지진 시 대피방법을 홍보하는 회수가 늘어났고, 대피소를 파악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그 시도는 얼마나 구성원의 층위가 다양하며, 이 중 일부는 평소에도 체념하고 있음을 인식하는가. ‘안전 매뉴얼’ 발간물은 일반적인 도해 형태의 매뉴얼의 외피를 쓰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특성을 지닌 이의 대피가 어떤 시스템과 공동체 아래서 가능한지를 말한다. 영상을 통해 피해의 상과 경험을, 워크숍을 통해서는 그 경험의 대비를, 그리고 매뉴얼을 통해서는 어떠한 인민적 경험과 학습이 필요한지를 묻는 유기적 분업을 리슨투더시티는 보이고 있다. 올해의 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내세운 ‘좋은 삶’이라는 주제가 시작 전부터 붕괴된 가운데, 리슨투더시티는 그 ‘좋은 삶’이라는 말 자체가 각자마다 층위가 다르게 다가옴을 인식하는 형태로 새로운 작업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