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여정

약한 나로 강하게

2025. 4. 3.

by 한상훈



내가 처음으로 피아노를 칠 때​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이 찬양을 가장 많이 연주했다. 강해지고 싶었다기보다는 나 자신이 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살려고 애써왔지만 실제로는 강해 졌다기보단 내가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아가면서 내가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를 배우고 있다. 강해지는 것이 아닌 약함을 인지하는 과정이었다.


누군가에겐 이런 모습이 강해져 가는 과정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역경을 겪고 살아남으면 보통은 그를 두고 강해져서 돌아왔다고 표현하니 말이다. 그러나 역경을 겪고 돌아온다고 해도 정말 강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몸과 정신이 피폐해질 수도 있고. 살아는 돌아왔지만 삶의 의미나 목적을 상실할 수도 있다. 눈으로 보이는 근육이나 육체의 강인함은 늘어 보일지 몰라도 정신의 강인함과 성숙함은 낮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찬양에서 말하는 강함은 육체적 강함도 정신적 강함도 아닌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신 앞에 겸손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 나이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누군가에겐 이런 일들을 배우고 해내고 실패하거나 성취하는 과정이 강해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지식도 지혜도 권능보다도 위에 있는 것이 있다. 인간이 누구나 다 발걸음을 떼어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일을 마치는 것은 인간의 뜻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거대한 거래일수록. 거대한 계약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것들은 실패했고.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 보이는 일들은 성공하곤 한다.


약한 나로 강하게. 여기서의 강함은 전사의 강함이 아니다. 인간이 가진 한계를 깨닫는 것이다. 인간은 연약하고 수많은 상황에 감정적으로 요동치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 누구도 강하기 쉽지 않다. 폭풍에 놓인 촛불처럼 자신의 앞날도 하루 뒤의 미래도 보지 못한다.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인생을 살며 누가 미래를 예견하고 자신의 미래를 장담하겠는가. 하루 뒤도 모르는 이가 강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힘으로 전쟁에서 싸울 생각을 버렸다. 삶은 나의 한계를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쉽게 해낼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고, 그들이 어렵게 하지만 나는 쉽게 하는 것으로 그들을 도우며 함께 해내야만 한다. 그 누구도 강할 수 없다. 우린 모두 불완전하고 연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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