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9.
클럽은 상당히 흥미로운 장소다. 아무리 몰랐던 사람이라도 술이 들어가고, 같이 춤을 추면서 유혹하다 보면 다음날에는 처음 보는 사람과 상상치 못한 장소에서 눈을 뜨는 것이다.
로비스트들과 만나는 장소는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정해진 스폿이 몇 곳으로 정해져 있다. 공식적인 자리는 회사 사무실이지만 비공식적인 자리는 프라이빗한 식당, 그보다 더 비공식적인 자리는 클럽이 된다. 클럽에서 아주 늦은 밤동안 시간을 보내면서 핏을 맞춘다.
몇몇 VC 대표들은 클럽보다는 바를 좋아했었다. 바도 종류가 많다. 흔한 위스키바보다는 몇 곳의 정해진 바에서 보는 편이다. 그들은 각자 좋아하는 사업군이 있었고, 매일 같이 담배를 태웠다. 정확히는 시가를 더 태운 것 같지만, 젊고 능력 있는 VC 오너들은 그들만의 놀이 문화가 있다.
새벽 2시가 지나 몇몇 이태원 클럽을 다니다 보면 그곳의 사장님들과 인사할 일이 많았다. 나도 그렇고, 그분들도 그렇고 두 번 다시 인사할 일은 별로 없거니와 딱히 관심도 없을지 모르지만. 워낙 그렇게 소개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분들 입장도 이해가 된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아저씨들이지만 매일 같이 술과 유흥을 즐기는 이들을 상대하는 데엔 도가 튼 사람들이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서로를 믿고 일하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 세상은 그저 같이 있는 게 재밌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 결국은 일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같이 일했던 로비스트 분들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나와 노는 스타일이 잘 맞았고, 선호하는 톤이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선이 있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선이 있는 나 같은 스타일을 좋아했다.
인생에 목표랄 것이 즐거움인 건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건 돈이 얼마가 있든 권력이 얼마가 있든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즐거움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며, 나에게 있어서 즐거움은 제품을 판매해 얻는 사업가적인 즐거움에 가까웠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마약도 똑같았다. 유희 중 하나. 종종 대마를 피다가 걸렸지만 부모님을 통해 무마했다는 자랑을 하곤 했다. 좋은 부모님을 둔 덕에 약도 쉽게 구하고, 여자도 실컷 만나고, 사업을 말아먹어도 인생에 문제가 생길 염려가 없는 놈들이 태반이니 그들에게 사업가 정신이랄 게 있을까. 볼 것도 없이 그 잘난 부모님이 세상 떠나고 나면 1~2세대 안에 좌초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머저리들이 가득했다.
사람을 보는 통찰력이 고작 같이 노는 게 재밌는 거라는 사실은 인간이 얼마나 동물과 유사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같이 노는 게 즐거운 사람은 좋은 사람. 나에게 기분 좋은 말을 해주고, 동의해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내가 하는 일을 문제 삼는 이들은 실패한 패배자. 열등감에 휩싸인 인생 패배자. 승진에 미친 경찰, 검사 정도로 치부하니 세상 살기 무척이나 편리하다.
대가리에 똥과 마약만 들어간 놈들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주어진다는 것이 현시대의 문제점이라면 문제점인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다 한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수를 찾기 위해 별 짓을 다하는 인간들을 어찌 당해내겠는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좇는 사람들을 평범하고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는 이가 어떻게 따라잡겠는가.
결국 세상은 극단적인 사람들이 그들이 찾는 것을 찾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벌인 수많은 허물이 쌓이면 철옹성 같던 위엄도 무너진다. 그렇게 꾸준히 쌓아둔 업보가 그들을 무너뜨린다. 그들이 살기 위해선 그들의 업보를 감춰줄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또 다른 희생이 필요하다. 그때부터는 이들의 존재는 무엇일까. 사람일까. 아니면 생명을 빼앗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하는 흡혈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