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10.
불의에 대해 침묵하는 이들이 가득하지만 그들을 토끼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토끼는 아무리 위협에 놓여도 소리를 내지 못한다.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침묵하고, 자신을 감추고, 고통 속에서도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도록 설계된 DNA가 각인됐기에 극도의 상황을 제외하고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토끼와 같은 이들도 똑같다. 그들은 세상에 아무리 많은 불의가 가득해도 절대로 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에 토끼처럼 침묵할 뿐이다. 남들이 무엇을 하나 지켜보고, 숨고, 조용히 있을 뿐이다.
이들이 사회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생존을 위해 주어진 일에 충성한다. 노예나 다름이 없다. 반격하지 않는 노예. 폭력성을 거세당한 노예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사용하기에 얼마나 유용하겠는가. 아무리 잘못된 일을 시켜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하라는 대로 할 뿐인데.
먹이사슬에서 초식동물은 하위에 있지만 그 수가 많다. 인간 사회도 똑같다. 아무런 메시지도 내지 못하고,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권세에 야합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돕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살고, 자신의 생존만을 해내고 끝난다. 남길 유산은 자녀 토끼들에게 전달한 한 줌의 풀.
살이 뒤룩뒤룩 찐 토끼들이 양복을 빼어 입었다. 야수들에겐 아무리 살찐 토끼도 똑같은 토끼일 뿐. 먹고살기 위해서 이빨을 모두 뽑고, 발성기관을 쓰는 법을 잊어버린 이들은, 자신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투쟁하는 방법을 모른다. 주변엔 똑같은 토끼들만 잔뜩 있으니 야수들과 싸울 방법이 있겠는가. 야수의 먹잇감이 되었을 때 주변 토끼들은 아직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침묵한다. "나만 아니면 돼." "나만 아니면 괜찮아." 하면서.
맹수의 눈에는 다 똑같이 보일 뿐이다. 더 살찐 놈이 맛있어 보일 뿐. 싸우는 법을 상실한 인간은 언젠가 싸워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승리할 확률이 없다. 그게 토끼로 살면서 맞는 예정된 최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