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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멍청함

2025. 8. 18.

by 한상훈

말을 통해서는 멍청함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말은 빠르고 비언어적 요소들과 결합해 설득력을 갖출 수 있다. 표정, 손짓, 발성, 상황 등에 따라 어리석어 보이는 말도 현명해 보이는 말이 되고,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반면 글에는 멍청함이 날 것으로 담긴다. 정돈되지 않은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글에는 지혜와 지식만큼이나 멍청함도 담긴다.


개발자로 일하면 개발자의 글이라 할 수 있는 코드를 통해 그들의 지능을 볼 수 있다. 코드는 그 자체로 개발자가 가진 지식과 지혜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개발자에게 코드는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는 창이 되어주기도 하고, 멍청함을 보여주는 창이 되어주기도 한다.


AI를 통해 코드를 짜도록 하다 보면 종종 개발자로서 작성해선 안 되는 미흡한 코드를 주먹구구식으로 구현할 때가 있다. AI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것을 방치한 개발자가 문제겠지. 인공지능이 만든 그럴듯한 코드는 거친 면을 가진 3D 프린터 결과물과 같았다. 겉은 그럴싸하지만 구조가 연약하고, 출력면은 거칠고, 많은 리터칭 후에서야 원하는 목적대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글을 통해 사람을 판단하는 걸 더 선호하게 됐다. 개발자에겐 코드. 일반 사무직에겐 그들이 작성한 문서들. 기획서, PPT, 주고받는 대화 기록들. 사람은 만나서 대화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적어도 지혜와 지식은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에 완벽한 예가 바로 개신교에서 가장 주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의 기록에 담겨있다.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몸으로 대할 때에는 약하고 말도 시원치 않다.”

- 고린도후서 10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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