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지만 결국 도착했구나
한 밤중이 되어 창 밖을 바라봅니다. 역삼동 테헤란로를 내려다보는 사무실에 오기까지 참 오래 걸렸습니다. 올해로 6년이 걸렸네요. 피씨방에서 일하며 창업을 준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늦은 밤 불 켜진 컴퓨터를 보면 행복감을 느낍니다. 모두들 지쳐서 집에 돌아갈 이 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이 뿌듯함을 줍니다. 일을 그냥 오래 해서 즐거운 건 아닙니다. 내가 계획한 삶을 향해서, 선택한 삶을 제대로 살아갔구나 하는 뿌듯함입니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회에 돌아가면 정말 제대로 살아봐야지.
하지만 그 결심,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회에서 누리는 수많은 자유는 군대에서 억압받던 시절을 잊게 만들 만큼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성공도 그렇습니다. 성공의 달콤함은 성공까지 이르게 했던 쓰디쓴 시간을 잊게 만듭니다.
저는 늦은 밤이 됐을 때 과거를 떠올려봅니다. 피씨방 바닥을 닦으면서 꿈꿨던 창업의 꿈. 부모님 집에서 지내며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코드 쓰던 모습. 군대에서 눈치 보며 시간에 쫓겨 가며 코드를 썼던 시절. 추운 날 따뜻한 캔커피 한 잔 사 먹을 천원이 없이 1호선 지하철을 기다리던 순간. 대학 시절 돈이 없어서 맨 밥에 집에서 가져온 한 숟갈의 차가운 멸치 반찬으로 한 끼를 때우던 날.
이제 막 서른이 된 저는 지난 6년의 아픔을 잊을 만큼 요즘 달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오늘의 제 자신이 있게 해 준 과거를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시작한 곳을 잊지 않는다면 무척 강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저는 과거를 잊지 않고 싶습니다. 특히 제가 기억해야 할 가장 비참한 순간들을 곱씹어 봅니다. 마치 쓴 한약의 맛처럼 과거의 씁쓸함이 입에 머물곤 하지만 저는 과거를 감사히 여깁니다. 그 힘든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현재의 내가 압박감 속에서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도 과거의 힘든 순간들을 경험했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