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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May 09. 2021

지난 6년

힘들었지만 결국 도착했구나

사무실에서 내려다본 테헤란로

한 밤중이 되어 창 밖을 바라봅니다. 역삼동 테헤란로를 내려다보는 사무실에 오기까지 참 오래 걸렸습니다. 올해로 6년이 걸렸네요. 피씨방에서 일하며 창업을 준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늦은 밤 불 켜진 컴퓨터를 보면 행복감을 느낍니다. 모두들 지쳐서 집에 돌아갈 이 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이 뿌듯함을 줍니다. 일을 그냥 오래 해서 즐거운 건 아닙니다. 내가 계획한 삶을 향해서, 선택한 삶을 제대로 살아갔구나 하는 뿌듯함입니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회에 돌아가면 정말 제대로 살아봐야지.


하지만 그 결심,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회에서 누리는 수많은 자유는 군대에서 억압받던 시절을 잊게 만들 만큼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성공도 그렇습니다. 성공의 달콤함은 성공까지 이르게 했던 쓰디쓴 시간을 잊게 만듭니다.

고향 풍경

저는 늦은 밤이 됐을 때 과거를 떠올려봅니다. 피씨방 바닥을 닦으면서 꿈꿨던 창업의 꿈. 부모님 집에서 지내며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코드 쓰던 모습. 군대에서 눈치 보며 시간에 쫓겨 가며 코드를 썼던 시절. 추운 날 따뜻한 캔커피 한 잔 사 먹을 천원이 없이 1호선 지하철을 기다리던 순간. 대학 시절 돈이 없어서 맨 밥에 집에서 가져온 한 숟갈의 차가운 멸치 반찬으로 한 끼를 때우던 날.


여유로운 주말 산책, 안국동

이제 막 서른이 된 저는 지난 6년의 아픔을 잊을 만큼 요즘 달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오늘의 제 자신이 있게 해 준 과거를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시작한 곳을 잊지 않는다면 무척 강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저는 과거를 잊지 않고 싶습니다. 특히 제가 기억해야 할 가장 비참한 순간들을 곱씹어 봅니다. 마치 쓴 한약의 맛처럼 과거의 씁쓸함이 입에 머물곤 하지만 저는 과거를 감사히 여깁니다. 그 힘든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현재의 내가 압박감 속에서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도 과거의 힘든 순간들을 경험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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