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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Mar 06. 2022

만원 신발의 기억

내 인생 최고의 신발 아쿠아슈즈

시장 신발 가게, 게티이미지

요즘은 다들 쉽게 나이키를 사서 신습니다. 저렴한 모델이 5만 원보다 낮으니 크게 부담되지 않는 금액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에는 나이키 신발이 비쌌습니다. 그때도 6-7만 원이 넘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15-20만 원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연하게도 저는 초등학생 내내 시장에서 큰 신발을 사서 신었습니다. 딱 맞는 신발을 신어 본건 중학생이 됐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시장 신발 가게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새 신발에서 나는 고무 냄새가 좋았고, 신발 속에 들어있는 부스럭 거리는 포장 종이의 촉감도 좋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만 원짜리 신발에 감사하며 잘 신어왔습니다.

이런 모양이었는데 지금은 더 싸네요!


그런데 6학년이 됐을 무렵 저는 여름에 아쿠아 슈즈라고 조금 독특하게 생긴 시원한 신발을 샀습니다. 한 만 이천 원쯤 했습니다. 평상시 사던 것보다 비싸고 예뻐서 친구에게 새 신발이라며 자랑을 했는데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난번보단 낫네.”


친구가 신던 느낌의 나이키

그 말은 분명 좋다는 말이지만 그날 저는 제 신발과 친구의 신발을 비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들떠서 자랑했던 그 아쿠아슈즈보다 친구는 6배는 비싼 나이키, 아디다스만 신던 걸 이제야 봤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합니다. 나는 지난 수년간 아무렇지 않게 행복하게 만원 신발을 신었는데, 친구의 한마디로 그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것 같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내가 평생 신어본 가장 좋은 신발도 그 친구한테는 비교도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때, 어머니는 제게 인생 첫 브랜드 운동화를 사주셨습니다. 그 당시 인기가 있던 아식스 신발인데 가격이 무려 67,000원이나 됐습니다. 어머니가 이틀을 더 일하셔야 벌 수 있는 큰돈이었습니다. 저는 이 신발을 사고 평생 가장 행복한 밤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배게 옆에 두고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아식스 신발을 신고 등교하는 길은 날개가 달린 것처럼 가벼웠습니다. 아침에 만난 반 친구는 바로 신발이 바뀌었다면서 잘 샀다고 말해줬습니다. 그 순간이 벌써 17년 전쯤인데도 자주 생각나곤 합니다.


저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비교하면 내 행복이 하찮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맛있게 먹은 라면이 비루해 보이고, 내가 힘겹게 만든 작품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날이 오곤 합니다.


매주 이런 감정을 느낍니다. 주말에도 열심히 즐겁게 일을 했음에도 연인과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느낀 행복감이 하찮게 느껴지곤 합니다. 수년을 고생하며 만들어간 하루하루가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과 비교하면 대단할 게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고, 정말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어 일을 시작했는데 날이 좋건 나쁘건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과 창 밖에 수많은 연인들,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대조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만 원짜리 신발은  좋았는데,  나는 나이키를 부러워했을까.’


연인들의 모습을 보면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모든 걸 다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시장 신발에서 감사함을 느꼈고, 누군가는 절대로 시장 신발에서 감사함을 느끼지 못할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행복한 연인들 사이에서 신발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연애를 못하나 봅니다. 내일은 ABC마트에 가서 신발이나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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