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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Jul 12. 2022

역사의 중간에 사는 사람

개인의 역사를 이뤄내는 사람

사람들과 나의 차이점이 한 가지 있다면 나는 사진이나 동영상보다 글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진과 동영상은 글보다 보기 좋고, 읽기 좋고, 해석할 필요가 없고, 노력이 적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작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적고, 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생각을 담아야 하면서 동시에 노력이 담겨야 하니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좋은 글을 원한다면, 나의 마음을 담아 타인에게 전달할 글을 원한다면 그것이 쉽게 쓰일  없다는  인정해야 한다. 누구나 쉽게   있는 일이라면 그것을 위대하다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대단하다 평가할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개인에게 있어서 위대한 일이다.


글은 자아를 담고 있고, 순간의 감정과 생각이 정제되어 한 장의 종이에 담긴다. 또한 글에는 시간과 서사가 담긴다. 개인적인 역사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시간에 함께 서서 글을 따라 동행할 수 있다.


난중일기를 보면서 이순신 장군님의 인생과 고민, 선택을 하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보면 유대인 포로들이 겪은 고문과 강제 노동의 참상의 시간을 옆에서 보며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들이 적지 않았다면 우리는 알지 못할 것이고, 그들이 적어주었기에 수천만명의 인생에 울림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유명인도 아니고, 그냥 한 사람인데…” 하며 개인의 글쓰기를 가치 없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그런 마음으로 글쓰기를 한다면 기대만큼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퇴고 없이, 사색 없이 깊이 없는 글을 짧게, 한 두 번 써 내려갔을 것이고, 무성의한 기록을 남기다 흥미를 잃을 것이다.


반면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그 순간 진심을 담아 소중한 기억과 감정을 글이 담는다면, 필체가 어떠하든 그것은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 된다.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당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그 시절 생각을 볼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낡아빠진 일기장에 삐뚤게 적어 내려간 글자가 어린 시절 내 풋풋함과 그 시절 사고방식을 조금이나마 담아낸다.


글은 가장 진솔하게 개인의 역사를 담아내고, 동시에 나의 지식을 가장 오랫동안 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영상 콘텐츠가 발전했어도 인간은 배우기 위해 읽는다. 읽고 질문에 답하고, 옳고 그름을 해석한 내용을 다시 읽는다. 잊지 않기 위해 듣고, 적고, 적은 것을 다시 읽는다.


훌륭한 바둑 기사가 되기 위해서 수천 장의 기보를 수없이 읽어야 한다.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서 좋은 코드를 수없이 읽어야 한다. 피아니스트는 악보를 읽어야 한다. 읽어야 하고 그것을 써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류가 택한 지식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나는 글을 쓰는 것에 한 가지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며 글을 쓰라 말하고 싶다. 과거의 내가 가진 신념을 담아 미래의 나에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젊은 시절의 내가 꿈꾸던 미래의 모습을 기록하고, 그때 했던 생각과 마주했던 고민들을 이후에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러나 글은 가능하고, 글을 통해서 나는 미래의 나와 소통할 수 있다.


시대가 점점 더 짧고 쉽게 소비되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유튜브도 길어서, 배속을 걸고 보는 시대가 됐다. 배속을 건 영상도 길어서, 쇼츠를 보는 시대가 됐다. 수백 개의 쇼츠를 연달아 봐도 영혼을 살찌우게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1초도 없을 수 있다. 시대가 꿈꾸는 사람들이 모조리 좌절하고, 포기하는 시대가 된 것 같아 보이지만 모두가 포기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깨어있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나는 나의 신념을 미래로 담아 가져가고 싶다. 나라는 사람의 역사를 제대로 담아내고 싶다. 과거와 미래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어영부영 살고 싶지 않다. 현실 속에서 과거와 미래의 나와 공존하고 싶다.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그 수단은 결단을 잊지 않을 기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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