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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Aug 20. 2023

8월 19일

2023. 8. 19

아침은 전화로 시작됐다.


아침에 올 전화는 한 곳도 없었다. 반복되는 진동에 눈을 떠서 전화를 받으니 언제나처럼 모르는 사람. 혹시나 내가 거래하는 대표의 다른 연락처인가 싶어 전화를 받자 50~60대 여성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완전히 잠긴 상태로 말하니 전화를 끊어버리는 게 아닌가. 나는 전화를 걸어 용무를 물어보니 '서울 사우나 아니냐고 한다.' 벌써 2번째다. 몇 주전엔 한 남자가 3~4번을 연속으로 전화해서 똑같은 말을 했는데 이번엔 아주머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에서 깨 보려고 하니 이상하게 목 뒤가 뻣뻣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정신을 차리며 밤사이 온 연락을 확인했다. 이태원에 사는 친구에게서 온 일상적인 이야기. STO 사업 관련해서 RWA를 제안하는 이야기. 그리고 A 국가에서 B 국가로 큰돈을 송금해야 하는 이야기. 3개의 연락이었다.


RWA에 대해서는 용어는 처음 들어봤지만 처음 STO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RWA에서 말하는 실물 자산과 연계되는 구조를 생각했었기에 특별할 것이 없었다. DAI, MAKER 등은 몇 개월 전부터 관심 있게 조사했고, 한 때는 거기서 만들어내는 수익 구조가 놀라워서 소스코드를 하나하나 분석하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RWA라는 표현보다는 광의적 표현으로 DeFi라 불렀다. 검색을 해도 결과가 많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또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자신들의 서비스를 포장하기 위해 만든 신생 단어가 뻔했다.(아마도 그곳은 한국의 K사로 추정한다)


한참을 이것저것 살펴보다 부산에서 이뤄지고 있는 큰 사업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했다. 내가 가진 아이디어는 부산 프로젝트에서 필요로 하는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대한민국에는 딱 1곳뿐이라 생각했고, 그 외에는 국가 단위 또는 상품 자체가 모두 흠집이 난 제품이라 공급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요즘은 잠자기 전에 미국 뉴스를 10분 정도 듣다가 잔다. 일할 때도 켜두기도 하고, 오늘 아침에도 뉴스를 들었다. 미국과의 시차가 있어서 아침 뉴스가 아닌 밤 뉴스라 하는 게 맞겠지만, 원래는 내용과 상관없이 쭉 듣는 편인데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을 초대한 내용이 떠서 확인해 봤다. 들어보니 크게 관심이 가진 않았고, 도리어 지난 30년 동안 가장 높은 모기지 지수가 됐다는 뉴스가 인상적이었다.


미국인들은 리먼 사태를 기점으로 모기지에 대한 환상이 분명 깨졌고, 위험성을 인지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형태만 달라졌을 뿐 모기지로 들어온 자금의 총량은 계속해서 커졌다. 요즘의 트렌치(tranche) 구성이 어떻게 되는진 모르겠지만 트리플 A 상품을 구성할 때 온갖 쓰레기 트렌치로 구성해서 올리는 짓은 안 할 것이라 믿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과연 지켜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일을 시작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피그마를 켰다. 오늘은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지만 반대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UI는 개발보다 중요할 때도 있다. 개발은 완벽하게 한다고 해서 사용자가 느끼는 만족도는 크게 오르지 않는다. 속도의 차이 정도일 것이다. 완벽히 동작해야 정상이고, 안 되면 기분이 나쁘고. 반면 UI는 설계에 따라 사용자의 경험이 변화한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만들게 되는데 참 고민인 것은 흔해 빠진 UI를 택할지 조금이라도 매력적일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볼지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컨설팅 그룹에 속해 일을 하면 장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24시간 언제던 사업 이야기를 공유해도 아무도 싫어하지 않는다. 새벽 2시에 자료를 보내고, 의견을 남겨둬도 상관없다. 어차피 다른 파트너는 다른 국가에 있어 시차도 있고, 새벽에도 깨어있다면 답신을 보낸다. 굳이 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 공유기 때문에 밤새도록 노는 셈이다.


주말 아침에 연락을 해도 문제없다. 공휴일이어도 상관없다. 언제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은 나 같은 일에 미친 사람들에겐 좋은 일이다. 감사하게도 항상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 들하고만 이런 대화방이 열리곤 했다. 당장 내가 속한 모든 컨설팅 방은 적어도 80년생보다 위에서 시작하고, 위로는 45년생쯤까지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사업을 하는 몇몇 대표와 이사, 그리고 총괄 담당자 등은 비교적 어리다. 즉 95년생부터 45년생까지 회의를 한다.


낮부터 저녁 친구와의 약속 전까지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메인 페이지를 비롯해 로그인 모달과 콘텐츠가 등록됐을 때, 프로필 버튼을 누른 경우 등 6-7장 정도 되는 시안을 만들고 나니 오후 4-5시가 됐다.


해외에 있는 파트너 대표님이 그쯤 연락을 주셨다. 국가별 법인 계좌 설립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는지 조금 더 찾아보고 공식적인 뉴스기사로 전달드렸다. 언제나처럼 대상 국가는 비슷하다. 한국, 싱가포르, 두바이, 그리고 그때그때 다른 한 국가.


친구를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온갖 이야기를 했다. 이 친구는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있어 만나면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오늘은 내 유튜브 영상을 본 이야기도 하길래 재밌었다. 내가 이야기한 돈, 권력, 정보의 삼각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불어 내가 어떤 삶을 살기에 이곳저곳에 기록해두고 있는지도 이야기했다.


아마도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나는 내가 경험하고 소중한 기록들을 종종 올릴 것 같다.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아마도 7일 이후에 내가 가진 모든 채널과 시스템을 통해 여러 자료들이 공유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비밀을 외딴섬에 숨길 생각이 없다. 모두가 볼 수 있는 숲을 만들고, 숲 곳곳에 심어진 나무속 비밀의 열쇠가 들어있을 것이다. 왜냐면 사람들은 대부분 작은 것을 경시하고, 짧은 글 하나를 읽는데 1분의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넘기곤 한다. 눈에 보이는 곳에 정답이 있으나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시대여. 나는 그들이 따라올 수 있는 실마리를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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