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일은 찬양이다. 찬양과 함께 참으로 오랫동안 신을 찾아다녔다. 그렇다고 선하다거나 옳게 살아왔다는 확신이 있지도 않다. 그저 아주 오랫동안 공허함을 느끼며, 그 공허함의 근원에 있는 삶의 목적에 대해 물음을 찾아 살았다.
그것은 갈망이 되어 신에 대한 수 많은 질문들로 발전했다.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성경을 이해해야 했고, 동시에 확신할 근거가 필요했다. 어떤 이들은 질문을 의심으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에게 신은 공허함을 이겨내면서까지 살아야 할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신이 없다면 삶의 가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신에게 이런 약속을 했었다.
'신이 진정 있다면 나에겐 돈이 필요 없습니다. 내가 돈을 갖지 않아도, 때에 맞춰 음식을 주실 수 있고, 입을 옷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믿음을 가지고 대학 시절을 참으로 힘들게 보냈다. 내가 가진 얼마 안 되는 돈은 어디에 썼을까? 사랑했던 교회 학생들에게 모조리 사용했다. 궁핍한 대학시절은 모두 그들을 위해서 헌신했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돈이 없어도 하늘이 내려줄 것이라는 믿음은 지키기 쉽지 않았다.
그랬기에 성경을 몇 번 읽었을지도 모를 만큼 보았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번역본의 성경을 보았다. 최종적으로는 히브리어에서 한국어로 직역한 번역본 뿐 아니라 영어와 스페인어 성경도 보았다. 진리는 그 어떤 지식보다 귀중한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 믿었다.
사람들은 믿었다고 하는 것을 단순히 교회에 나가서 잠깐 감동받고, 좋은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아 울기도 하는 일련의 활동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것이 일반적이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얼마를 쓰던 신이 채워주리라는 믿음으로 십일조를 9배로 드렸다. 들어온 돈의 10%만 가지고 생활했다.
성경을 많이도 보았다. 눈으로 보고, 글로 적고, 입으로 읽었다. 머릿속과 가슴엔 말씀들이 선명하게 떠다니곤 한다.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은 복을 받아 부자가 돼서 폼나게 사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처음 신을 믿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선명했던 것 하나는, 신이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는 점이다.
중학생 시절 집까지 걸어오는 1시간이 넘는 길에서 아무도 없고, MP3도 없던 그 시절. 나는 신과 이야기하며 걸어왔다. 왜 나를 만드신 건지. 세상은 무엇인지. 옳은 삶은 무엇인지.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신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날 만든 이유를 물어봤다. 수없이 많은 질문 속에서 나는 그가 내 삶에 어떤 형태로 대답해 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숨겨진 진리를 마주하고, 비유로 표현된 수많은 지혜를 마주했다.
진리와 지혜가 눈을 밝히지만 여전히 공허함은 남아있다. 그러나 그 공허함 덕분에 나는 신과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여전히 이야기하곤 한다. 지혜를 누이로 부르기도 한다. 나는 사람이 알고 있는 세상의 지혜와 지식은 유한하다는 믿음과 불가지론에 가까운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나, 한 편으로는 신을 신뢰한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건들과 만남들. 그리고 그 과정 과정 속에서 발견한 진실이 발의 등불이 되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길을 모른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삶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갈망을 말한다. 이 갈망의 끝에 있는 그것이 무엇이든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 주었고, 삶의 빛나는 푯대가 되었다.
처음 내가 그와 깊게 이야기했던 순간이 떠오르는 밤이다.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하며 나는 구하고 싶은 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꿈을 향해서 나아가고 싶다. 꿈의 끝에 도달하면 그곳에 신이 있을까? 어쩌면 신은 이미 내 곁에 와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어쩌면 탄생 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