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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Jul 04. 2024

『돌풍』 리뷰(스포일러)

대한민국을 바꿀 초인이여 오라



'대한민국의 가장 높은 곳 청와대에서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다뤄졌었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도 과거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관심을 가지는 국가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권력의 꼭대기를 다룬 현대사 영화는 충무로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은 이러한 면에서 과거사를 다루지 않았음에도 그 어떤 영화보다 현실적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주인공을 다루기 때문일까. 한국 시리즈 1위를 달성했음에도 비교적 미디어에서는 조용한 반응이다. 


『돌풍』과 어울리는 곡, The Way Home - Tony Anderson





1. 괴물이 된 사람들

돌풍』의 시작은 현 대통령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현 대통령이 죽은 이유는 대통령 자녀의 비리를 밝히고, 대통령과 측근들 및 여당의 비리 자금을 모조리 숙청하기 위함이었다. 주인공은 대통령을 시해했으나 한 때는 그들 모두가 민주화의 이름으로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롯해 그들이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 그들은 괴물을 상대하다 결국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버렸다. 니체의 말처럼 그들 역시 부패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2. 민주화 운동

이들은 한 때 민주화 운동을 했고, 그중에서도 주인공과 끝까지 대립하는 '정수진'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인물로 묘사된다. 

대통령을 보호하려 비리를 일삼는 정수진

극 중 묘사되는 정수진은 한 때 시민운동을 하며 모진 고문을 받았던 현시대의 정치인들을 묘사한다. 이들의 젊은 시절에는 분명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이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권력을 얻고, 그 과정에서 민주화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또 다른 부패를 일삼는다. 그들이 지켜야 할 유산은 어느새 권력과 민주화의 상징이 된 인물들이 됐다. 고인이 된 대통령(장일준)을 성역화하고, 그에 대한 비리를 조사하는 것을 정치 공격으로 표현한다. 


정수진은 함께 시민운동을 하던 전대협 의장 한민호와 결혼한다. 한민호는 '전대협 의장'이라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기며 이제는 초라해진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의 사모펀드 회사 '남산 C&C'를 지키기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는다. 재밌게도 현시대에 한민호와 같은 인물은 현존한다. 과거 시민운동을 하고, 옥살이를 하고, 최루 가스를 마시며 투쟁한 이들은 정치, 사회, 문화, 경제계에 걸쳐 한 자리씩 하고 서로가 밀어주고 끌어주고, 자리를 채워주기도 한다. 이들이 원하던 민주주의는 이미 이뤄졌다면 이들은 이제 무엇을 괴물로 두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을까? 허상에 가까운 괴물을 만들고 자신들의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기 급급했다. 


극 중 한민호는 더 이상 자신의 사람들을 지킬 수 없게 되자 자살을 선택한다. 이 또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조사가 시작된다고 하면 자살하는 인물들. 우리는 이미 수년간 수없이 봐왔다.


3. 북한과 고문

조상천은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며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강경파에 해당한다. 그는 젊은 시절 빨갱이와 싸운다는 명목으로 고문을 일삼았다. 그가 빨갱이와 그토록 싸운 이유는 자신의 가족이 북한에 있어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국가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이 남한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수단으로 애국을 주창하고 고문을 일삼았다.


정수진은 조상천에게 젊은 시절 고문을 당했다. 그렇기에 정수진은 조상천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는 상상할 수 없었고, 고통이 너무 컸던 나머지 물고문 트라우마와 그가 사용했던 라이터 소리의 딸깍이는 소리만 들어도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다. 어찌 보면 현시대가 낳은 괴물이 조상천과 정수진이었을지도 모른다. 정수진은 모진 고문을 견딘 이유가 남편이 된 한민호를 보호하기 위함도 있었다. 조상천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고문을 했다. 한민호는 민주주의를 앞세워 자신의 영리와 업적을 취하려 했다. 모두가 대의명분이 있었으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왔다.


조상천은 살아남기 위해 북으로 간 형제와 아버지를 사살하게 한다. 그리고 동시에 북한에 반대하는 여론을 얻게 됐다. 반면 정수진과 그가 비호하는 장일준 대통령은 북한에게 온건한 정책을 해왔기에 여론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북한에 구호물자로 보낸 쌀이 핵무기가 되어 떨어질 위험에 처하니 강경파 조상천의 여론이 큰 힘을 얻었다. 사람들 눈에는 조상천이 북한의 위협에서 구해줄 인물로 보였겠으나 그는 그 누구보다 북한과 긴밀하게 연락하는 사이였다.


4. 수행 비서

박동호의 수행비서와 정수진의 수행비서는 극 중에서 결정적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둘은 서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으나 일련의 사건으로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진 사이로 묘사된다. 이 둘은 서로에게 연인이었다는 과거를 이용해 녹음기를 심거나 CCTV를 보내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다. 권력의 싸움을 위해 일말의 감정도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묘사했다.


박동호 대통령의 수행비서 서정연
정수진의 수행비서 이만길


5. 악의 심장

이렇게 정치인들이 싸움을 하는데 들어가는 돈은 재벌 회장 '강영익'의 호주머니에서 모두 나왔다.

대진그룹 회장 강영익

강영익은 극 중 문제가 있는 아들들을 효용성이 떨어지면 버리고, 정치인들을 돈으로 구워삶는다. 심지어 헌법재판관들을 매수하기도 하고, 대통령을 상대로 국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딜을 제안받기도 한다. 정수진은 강영익 회장의 힘으로 박동호와 싸움을 이어가지만 박동호는 강영익 회장이 보낸 인사 명단 중 단 한 명도 뽑지 않고, 오히려 블랙리스트로 사용한다.


6. 청문회의 의미

박동호는 국무총리 청문회를 통해 정수진을 국무총리 내정자로 올려 청문회를 받게 하고, 청문회에 정수진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칼 '김종구'와 '조상천'을 배치한다. 그러나 정수진은 이를 역이용해서 청문회를 제대로 된 질문도 없이 시간만 때우는 곳으로 바꿔버리고 결국 국무총리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 뛰어난 사람을 뽑기 위한 청문회는 오히려 감출 것이 많은 인물의 실체를 밝히고 칼질하는 자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7. 정의의 검사들

극 중 검사들은 두 가지로 나뉜다. 강영익 회장을 중심으로 돈을 받아먹은 비리 국회의원들과 모든 야합 관계를 뿌리 뽑으려는 3명의 검사와 그들을 따르지 않고 정수진의 수하가 된 검사들이 있다. 박동호는 검사 출신으로 한 때는 강영익을 잡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더 큰 계획을 짜게 된다. 그가 직접 대통령이 되어 모든 것을 계획하고, 대통령의 힘으로 이들을 모두 잡아넣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현 대통령을 시해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렇기에 함께 정의를 쫓던 검사인 '이장석'은 친구이자 함께 정의를 쫓던 검사인 박동호를 수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박동호는 이장석을 잘 알고 있었다. 이장석이 설령 대통령이자, 친구이라 할지라도 정의를 위해서는 끝까지 수사할 것을 박동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해한 사실을 감추며 자신의 정의를 위해 극의 마지막 장을 향해 나아간다. 이장석은 이 과정에서 박동호 역시 정의를 위해 또 다른 부정을 저질렀다 생각한다. 


8. 죄를 지우기 위한 사죄

박동호는 심판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스스로가 목숨을 끊어 정수진의 대통령 시해 사실을 밝히고, 자신은 장익준 대통령을 시해한 죗값을 스스로가 치렀다. 죽음이라는 값을 무게추에 올리고 이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진행해 갔던 것이다. 박동호는 극 중 '내가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가겠다.'와 같은 표현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살아서 영리를 추구할 목표는 없었기에 목숨을 건 싸움을 했고 승리할 수 있었다. 그 유산을 바탕으로 정수진은 자신의 시해사실을 스스로 인정했고, 50명의 부패한 국회의원들의 명단을 검찰이 확보했다. 역사상 유례 없는 부정부패 청산을 위해 함께 민주화의 이름으로 싸운 두 명의 대통령의 목숨이 낙화했다.



9. 현실과 이상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현실에는 수많은 장익준, 정수진, 강영익, 조상천, 이장석과 같은 인물이 있으나 그 누구도 박동호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현실과 가까운 인물들과 마치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 같은 묘사는 드라마를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드라마의 감독은 현실의 정수진에게, 조상천에게, 강영익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러한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대중들에게 미디어의 이름으로 현실의 장막을 살짝 거두어 보여준 것일까.


나는 정의를 추구하는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을 치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로는 정의를 위해 싸우던 이들도 어느새 적과 야합하는 인물로 정의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것처럼, 괴물과 싸우던 인물들은 어느새 괴물이 되었다.


돌풍은 그런 면에서 박동호와 같은 초인(超人)이 나타나 이 썩어빠진 사회를 구제해 주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광야 曠野 (遺稿)

이육사 李陸史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렷스랴



모든 山脉들이

바다를 戀慕해 휘달릴때도

참아 이곧을 犯하든 못하였으리라



끈임없는 光陰을

부지런한 季節이 픠여선 지고

큰 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엇다



지금 눈 나리고

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千古의 뒤에

白馬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

이 曠野에서 목노아 부르게하리라



《曠野(遺稿)》, 1945년 12월 17일, 自由新聞






썩어버린 잡초들과 늙은 여우들의 악의 카르텔을 뿌리 뽑을 돌풍이 이 사회에 찾아올까. 박동호가 태극기에 적어둔 돌풍은 한국 사회에 언제쯤 불어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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