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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Jul 06. 2024

주인공(主人公)

주인공으로 살기 시작하면 인생은 영화가 된다

인생이 영화가 된다.


내가 '주인공'으로 살고자 한다면.







주인공(主人公)


주인공은 불교에서 온 용어로 득도한 인물을 일컫는다. 주변의 상황과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자아를 관철하며 좌절에 꺾이지 않는다. 그것이 주인공이다. 


또한 선불교에서 쓰는 말로써 '너를 지배하는 자가 누구냐?'라는 말을 담고 있다. 당신을 지배하는 이는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가?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을 지배하는 자가 곧 자기 자신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통제하며 살고 있지는 못하다. 우리는 주인공으로 살지 못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을 해야만 하고,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주저하며 도망치곤 한다. 스스로에 대해 우리는 주인이 아니다. 자신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배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인생은 주인공이 아닌 삶으로 살 수밖에 없다.


"나는 나를 다룰 수 없다."


그렇다. 나는 나의 지배자가 되지 못했다. 주인공이 아닌 타자의 삶으로 하나의 몸 안에 갇혀 그저 세상을 관망하며 스스로 선택했다는 착각을 가지며 살아왔다. 내 인생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에도 주인이 아닌 것처럼 방관한다. 내 삶이 피폐해지고 있음에도 주인이 아닌 것처럼 방관한다. 내 몸의 주인은 누구인가. 누구에게 내 정신과 몸을 빼앗긴 것일까. 


위대함이란 무엇일까? 겉으로 보이는 엄청난 업적을 쌓아야 위대한 것일까.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부러움을 사는 인생이 위대한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위대함은 하루를 살기 위해 먼 사막을 건너 물을 길어 오는 이들이 그 더운 길을 걸으며 미래를 꿈꾸는 모습에서 위대함을 본다. 찢어지도록 비참한 바닥의 끝에서 나를 온전히 지배하고, 세상의 불공평을 견디면서도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영화에서 보이는 천문학적인 부를 아무렇지 않게 쓰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들이 주인공이 아니다. 이들은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 잠깐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허상.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 삶을 타자(他者)의 삶으로 보는 것이 아닌 온전한 책임을 지며 살아감을 의미한다. 이 환경마저도 나에게 주어진 필연적 위치이고, 내 처한 상황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주인공이 아니면서 주인인 것처럼. 삶의 주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으나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스스로와 타인을 속이며 나중엔 그 무엇도 아닌 형태로 삶을 마감한다.


어쩌면 이 길은 나를 찾아가는 길이었을지 모른다. 주변과 무관하게 나의 중심을 찾아가라는 길. 진정한 위대함을 찾는 길. 우리가 배운 모든 기준들은 허상이었을지 모른다. 그것은 태초부터 중요한 적이 없었을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난 이들에게는 세상은 무엇으로 보일까. 중요한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됐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게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을 때. 세상이 얼마나 자유로운 곳으로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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