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3.
정글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동물은 누구일까. 어떤 방법으로도 천적을 이길 수 없는 사냥감들일 것이다. 정글의 정점에 올라선 존재는 두려움이 아닌 배고픔만을 느낀다. 정점은 배고픔을 위해서도 사냥을 하겠지만 재미를 위해서도 사냥을 한다. 먹잇감이 살아남기 위해 간절히 뛰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따라잡는다. 먹잇감의 살기 위한 도주는 죽음의 왈츠가 되어 정점에게 유희를 준다. 사냥감아 뛰어라. 도망가라. 희망을 가지고 도망가라.
누구를 두려워하는가. 누구의 뜻에 따라 나는 움직이고 있는가. 나의 뜻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내가 움직이고 있는지. 수천수만의 군중으로 줄을 맞춰 서야 한다면 줄을 서고 있고, 줄에서 벗어나지 말라면 화장실에도 못 가고 참는 군중이 된다. 왜 도망을 가지 못 가는가. 권력에 굴종해야 먹이를 얻기 때문일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멍청한 규칙을 지키며 시스템이 시키는 춤을 춘다. 나의 춤을 보아라. 하며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같은 춤을 가르친다. 이것이 아버지의 춤이다. 이것이 어머니의 춤이다.
사냥감으로 인생을 마친다는 것은 꽤나 슬픈 일이지만 위치에 상관없이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도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목덜미를 노리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공포로 매일밤을 지내며 약과 여자, 술과 니코틴이 없이는 잠에 들지 못하는 정점도 있다. 부서진 영혼을 모아 죽음으로 사죄한다면 그가 천국에 갈 가능성이 있을까. 신의 판결은 모르겠으나 인간의 판결로는 영원한 지옥행이 어울리겠지.
왕이 된 사람은 자객의 공포를 견뎌야 한다. 그것이 아마존 정글과 인간 정글의 차이라면 차이겠지. 정점의 자리도 없다. 먹잇감과 포식자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뒤바뀐다. 아수라가 이곳인가. 절벽까지 도망친 먹잇감이 오히려 포식자가 되어버렸다면. 먹잇감을 뒤쫓던 포식자는 어떤 공포를 느낄까. 우스운 일이다. 죽음의 왈츠를 보며 게임을 즐기던 이가 이제는 먹잇감이 되어 꽁무니 빠지게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된다니. 사람들의 수백수천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그들의 입을 통해 칼이 전달된다. 칼날이 모두 자신을 향하니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는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 한 스쿱의 DNA를 전달하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을 보면서도 동시에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등 뒤에 숨긴 칼이 어떤 모양인지. 얼마나 길고 날카로운지. 어떤 목적인지. 웃는 얼굴 속에 오랫동안 숫돌로 갈아낸 칼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칼이 웃고 있구나. 너도 웃고 있구나. 도망쳐봐라. 구원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하지만 아무도 없을 거야. 그곳엔 더 깊은 어둠만 있을 거야.
영화에서 배워야 한다. 존 윅 같은 인물들이 바라는 것은 간절하게도 평온한 삶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평온한 범죄를 말살시킨 인물이 최종적으로 향한 곳은 평온한 집.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평온한 삶. 그러나 그 평온이 사라지는 날이 오니 칼춤이 광풍이 되어 모두를 찢어낸다.
현실에는 그런 이들이 없겠는가. 영화보다 더 한 현실이라는 말을 허다하게 하면서도 영화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펼쳐질 것이란 걸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만약 그런 현실이 이 땅에 존재한다면 누구에게 그런 세상이 보이기 시작할까. 힌트가 된다면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이던 흔적을 남긴다. 흔적은 원인과 결과를 따라 생기고, 모두의 눈에 보이면서도 모두에게도 관심받지 않은 이들에게서 나타난다. 나무를 숲에 숨기듯. 모두가 보고 있지만 볼 수가 없다. 표적이 붉게 타오르고 있지만 표적의 빛을 볼 수 있는 것은 저격수뿐. 그 누구도 길거리에 심어진 수많은 가로수를 진지하게 본 적이 없으니 나무를 볼 수 없다. 나무속에서 나무를 볼 수 없고. 정글 속에서 정점과 사냥감을 볼 수가 없다.
참담한 상황에 말을 잇기 어렵지만 어쩔 수 있는가. 그것이 이들의 규칙인 것을. 내가 적는 수백 개의 글과 줄 사이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겠는가. 공개적으로 수백 개의 글이 올라가도 그 안에 진짜 나무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보는 방법을 모르니 그저 껍데기나 훑어보고 끝나겠지. 아 저 나무는 나뭇잎이 많구나.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구나. 하며.
때가 되어간다. 생각보다 빨랐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늦었는지도 몰라. 내가 병신 같은 인간이어서 그랬을지도 몰라. 꿈속에서 환상과 현실을 헤매듯 여전히 멍청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어떤가. 이제 먹잇감의 숨통을 끊고, 털을 뽑고, 내장을 씻어 요리를 대접해야지. 오랫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오랫동안 고생한 모두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