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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Sep 19. 2024

큰 불에는 많은 땔감이 필요하다

2024. 9. 19.

BGM ON


Coasal (Inst.) · 랍티미스트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것만 가지고 그들이 나쁘다거나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활활 타오를 순간을 위해 넉넉한 땔감. 에너지를 모아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다. 나도 매일 모든 순간을 미친놈처럼 활활 타올라 일하는 인간이 아니다. 일 하나하나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넉넉한 땔감을 모아두어야 한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물기 머금은 땔감은 쉽게 불에 붙지 않는다. 사람들 마음이 그렇다. 축축해져서 도통 쉽게 불타지 않는다. 그게 나쁜 게 아니다. 툭하면 활활 타오르는 사람은 텅 비고 공허한 사람이 되기 쉽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쉽게 사용해 버린다면 그것이 나쁜 결과로 돌아왔을 때 극도의 허무함 속에 좌절하게 된다.


아티스트들도 비슷하다. 생각해 보면 앨범 하나를 만드는데 1년이 아니라 수년씩 걸리는 아티스트를 생각해 보면 의문에 들 수 있다. '아무리 곡이 안 써진다고 해도 1달에 1곡도 만들지 못하는 거면 문제 있는 거 아냐?' 하지만 정점에 선 아티스트도 때로는 수년씩 곡을 내지 못한다. 그들이 게을러서 그런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정신의 땔감과 육체의 땔감이 모조리 소진됐을지 모른다. 그게 인간의 미스터리다.


스스로를 잘 아는 게 필요하다. 나의 땔감은 바짝 말라 쉽게 불이 붙는지. 아니면 나는 물에 흠뻑 젖어 도통 불이란 게 붙을 수 없는 건지. 나를 태우면서까지 한 번 큰 불에 들어가 볼 배짱이 있는지. 아니면 따뜻한 방구석에서 귤이나 까먹으면서 보내는 게 적성에 맞는지. 모두가 불 구덩이에서 타오를 필요는 없다. 소소한 행복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만약 당신이 큰 불 구덩이에 들어가 인생을 제대로 태워 보겠다고 한다면 땔감부터 넉넉히 장전해두어야 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말이다. 어떤 멍청이들은 글로벌 게임에 들어가 보겠다면서 언어를 공부하지 않는 빡대가리 수준의 행태를 보인다. "영어를 못하는데 글로벌 플레이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하면 언젠가 여유 생기면 하겠다고 한다. "에라이 병신 새끼야"라고 대놓고 말하고 싶지만 나이깨나 먹은 인간에게 팩트를 들이밀면 삐지는 것이 어른들의 습성이다. 애들이라고 잘 삐지는 게 아니라 비겁하고 초라한 어른일수록 쉽게 삐진다. 


큰 불을 태워볼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계속해서 땔감을 모아야 한다. 그 땔감은 자신을 위해서 태울 에너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휴식을 취하면서도 적들의 동태를 살필 수 있다. 먼발치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모히또를 한 잔 하면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바다 안에서만 바다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바다에 꼭 들어가기 전에도 우리는 바다를 보고, 파도를 가늠할 수 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며 큰 플레이를 준비하면 된다. "와라 세상아", "덤벼 개새끼들아" 하면서 불구덩이에 모아둔 땔감을 들고 타오른다. 이제 춤을 출 시간이다. 무대에 올라갔으면 뭐라도 보여야 하는 게 연기자의 본분 아니겠는가. 사업을 시작했으면 단 돈 500원이라도 손에 쥐어보고 끝나야 하는 거 아닌가. 인생에서 큰 일을 해보겠다고 칼자루를 들었으면, 과거의 나라면 절대 못할 대담한 선택과 노력도 한 번쯤은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딱 1년만이라도 그 어떤 후회가 없게 살았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고, 주변인들이 모두 인정하는 그런 인간으로 살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조각불이 되어 사느니 방구석에서 남이 주는 돈 알뜰살뜰 모아 사는 게 현명하다. 그것이 그릇이 된다. 얼마나 태울 수 있는가. 


5년 태울 수 있어? 

10년 태울 수 있겠어? 

이거 망하면 너의 20대는 끝나는대도 괜찮겠어? 

이것도 망하면 너의 30대도 끝나는 거 알고는 있는 거지?


싸움을 걸라면 그 싸움이 웰터급인지 헤비웨이트급인지 알고는 시작해야겠지. 체급도 못 맞추고 경기장에 올라가는 선수는 창피를 면할 수 없다. 그러니 싸움을 하려면 체급부터 만들어야 한다. 꼭 전력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자신이 정한 방식으로 스스로와의 싸움을 준비하면 된다. 쪽팔리게 살라면 쪽팔린 인간으로 계속 쪽팔리게 살면 되고, 남 위에 설 생각이라면 남들이 인정할만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남 위에 서면서 인정 받지 못하는 인간은 뒷통수 부여잡고 끌어내릴 놈들이 천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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