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2.
쓰레기처럼 자라왔다고 자기 자신을 쓰레기처럼 대우하는 이들이 있다. 부모님의 폭행과 방치. 끝나지 않는 고함 소리와 싸움. 집 안에 들어갈 때면 나는 메스꺼운 술냄새. 박살 난 식기와 가구들.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낳아둔 것인가.
부모들은 자신들의 저주가 향할 곳이 없으니 자신의 혈육에게 저주를 뿌린다. "너 이 새끼 아버지한테 말이 그게 뭐야? 너 한 번 죽도록 맞아야겠구나?" 폭행의 씨앗. 자식을 향한 저주가 땅에 가득 뿌려졌으니 20살이 안되었어도 자식의 마음속에는 서슬 퍼런 원망의 칼이 자리 잡는다. 세상에 대한 원망의 칼이 가슴 깊게 박히게 된다.
게임 속 캐릭터들은 가끔 디퍼프에 걸린다. 상태 이상 저주 마법. 독에 감염되어 조금씩 체력이 깎이기도 한다. 저주 속에 자란 아이들은 어린 시절은 디버프에 걸린 삶과 같다. 부모가 내뱉은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마음속에 퇴비장에 쌓이고 쌓인다. 썩은 오물 냄새가 어린아이의 영혼에 가득 차고, 그들의 세계 역시 부모의 저주를 담는다. 대화의 목적은 끝없는 분노를 발산하기 위한 것일 뿐.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에 기시감을 느낀다.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게 맞는 것인가.
망가진 집에서 나오는 온갖 쓰레기 냄새가 인간에게 배인다. 벽지 가득한 곰팡이는 공기를 타고 아이들의 폐 속으로 들어간다. 이유 없이 아이들은 계속 아프다. 제대로 먹지 못한다. 콜록콜록. "너는 누굴 닮아서 그렇게 머리가 안 좋니?" "너는 누굴 닮아서 몸이 그렇게 약하니?" 누굴 닮겠냐. 너 아니면 너겠지. 저주가 또 다른 저주가 되어 서로에게 담긴다. 마음속에는 하루종일 분노가 남는다. 눈을 떠서부터 자기 직전까지. '복수할 거야. 내가 나이를 먹으면 꼭 복수할 거야.' 그렇게 아이는 커간다.
이 꼬라지로 처박힌 집구석은 한국에 몇 개나 될까. '비슷한 곳에서 자라온 사람 손' 하면 몇 명이 손을 들까. 유유상종. 저주의 상처를 아는 이들은 저주받은 자들과 가깝다. 따뜻한 온기와 사랑을 가진 이들에게서 본능적으로 도망가게 된다. 사랑받고 싶은 것뿐인데 사랑을 주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사랑에 허덕이는 방황하는 형제들이 유일한 가족이 된다. 이들은 피는 섞이지 않았을지라도 같은 병에게서 구원받고 싶은 환자들이니까. 그렇게 저주받은 자들은 형제들이 생기게 된다.
모두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집이 두려웠겠지. 매일매일을 어떤 것을 가지고서라도 분노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참담하겠지. 아무런 행복도 느낄 수 없었겠지. 그랬기에 혈육보다 더 가까운 형제가 생겼지만 알고 있다. 이 관계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언제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집에서 배운 것처럼 끝없는 저주를 담기 시작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큰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 그렇게 심장에 칼을 둔 이들은 성장한다. 사랑받고 누군가를 믿고 싶지만, 동시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때로는 사랑이 그 답일까. 고추 끝에 달린 도파민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엔 에덴동산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녀와 함께 한다면 지옥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아버지와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녀는 나의 어머니와는 다를까.
하지만 남자는 패배한다. 그가 좋아하던 여자는 더 대단한 놈을 쫓아다니다 차이면서도 그를 좋아하진 않는다. '씨발. 씨발...' 매일매일을 가슴속으로 욕하고, 가슴에 담긴 욕은 혀를 타고 세상을 향한다. 세상을 향한 저주. 세상을 저주하고 다니며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다. 날 그렇게 보지 마. 날 그렇게 바라보지 마. 나도 그저 똑같이 평범해지고 싶었어. 하지만 이렇게 무너져간다. 저주가 담긴 삶. 왜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삶. 태어나보니 욕을 먹고, 맞고 있고, 약자이고, 사랑해 주는 이 없는 삶.
죽자. 죽는 게 정답이었구나. 나는 죽어야 하는 놈이었구나. 아하 그걸 내가 몰랐었네. 내가 왜 당연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 내가 무슨 가치로 살아도 된다고 건방진 생각을 한 것이지? 그렇게 방법을 찾는다. 한강에서 뛰어내리면 어떤 기분일까. 물이 폐 속에 가득 차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마지막으로 보게 될 세상의 모습은 흙탕물일까. 아니면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리면 될까. 시체는 누가 처리해 주는 거지. 나는 끝까지 세상에 폐를 끼치는 것인가. 그래 조용히 죽자. 그래. 그래.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밤. 오랜 시간 아무도 듣지 못할 울음소리를 참아가며 남자는 긴 밤을 보낸다. 수백, 수천일 중의 하루이자, 수백 번도 반복해 온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저주 속에 있어보지 않은 인간이 어떻게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죽음을 고민하며 세상의 시선에 두려움에 떠는 이들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오늘은 무슨 맛있는 걸 먹어볼까요?" 같은 돼지 같은 말이나 뱉으면서 평온의 감사함도, 사랑받았음에 감사함도 모르는 이들. 화가 난다. 화가 나겠지.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거 같아 보이니. 내가 돌아갈 곳은 곰팡이가 가득한 저주받은 집. 그들이 돌아갈 곳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지어주는 자상한 엄마가 있는 집. 그 뻔한 차이가 미운 것이다. 난 잘못한 게 아닌데. 내가 이렇게 태어나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그거 아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패배감과 고통. 저주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는 가족이 없다. 그들의 부모는 어린 시절 그 어린 핏덩이들을 버렸다. 낳음과 동시에 버렸다. 먹여주고 키워줬다고? 좆 까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 그들은 가족이 없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어 한다. 강해 보여서라도. 지독한 열등감을 감춰서라도. 내 안에 가득한 분노와 저주의 쓰레기 통을 감춰서라도. 사랑받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