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웃기는 사람이다. 와이드 팬츠가 유행해서 하얀색 와이드 팬츠를 사 입은 나를 보고 "태권도 바지 입었네" 한다. '검은색 와이드 팬츠도 샀는데 이걸 어쩌지...' 하다 용기를 내서 입었는데 "오늘은 검도 바지 입었네" 한다. 한 두해 전부터는 내가 책 읽기에 빠져서 애들이 장난을 치든 쌈박질을 하든 식탁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책을 좀 읽었더니만 나를 "선비님~" 하고 부른다. 어찌 들으면 조롱 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웃기다. 어려서 면역이 되어 그런가 보다. 우리 아빠는 오래전부터 팔에 털이 많은 나를 보고 모림(털 毛, 수풀 林)이라 부른다. 그 별명을 어찌나 정성스레 오래도록 부르는지, 마치 내가 태어난 순간에 나의 풍성한 머리숱을 보고 팔에도 털이 많을 것을 예측하여 내가 털 毛 자와 수풀 林 자를 이해할 수준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렸던 사람인 것만 같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아빠는 팔에 털이 많은 것이 나를 닮은 내 첫째 딸을 모린(아이 이름이 린으로 끝남)이라고 부르고, 나를 안 닮은 둘째 딸은 무(無)린이라고 부른다. 친아빠가 이 정도면 남편이 "선비님~" 하고 부르는 건 애교 수준이랄까. 무의식 중에 아빠와 닮은 점이 있는 남자를 고른 것 같아 무섭다.
아빠나 남편이 치는 장난에는 코웃음이 쳐진다. 그런데 참 살다 보니 재밌어서 눈이 커지는 일도 생긴다. 최근 도서관에서 듣는 강좌에 만족도가 꽤 높았는데, 이제 그 수준이 뉴욕 시티 마천루처럼 하늘을 뚫을 기세다. 거기서 만난 인연 때문이다. 첫 수업이 끝나갈 즈음 강사님이 다음 시간부턴 하부르타 식 수업을 위해 좌석 배치를 둥글게 바꾸겠다 하셨다. 두 번째 수업에 가던 날은 길이 유난히도 막혀서 5분 정도 지각하고 말았는데, 강의실에 도착해 보니 둥그런 원에서 군데군데 빠진 이처럼 비어있던 자리들 중 하나를 선택해 앉아야 했다. 오른쪽에 하나 왼쪽에 하나 빈자리가 보였고 나는 왼쪽을 선택했다. 그날 수업에서 나는 '내가 자주 쓰는 말' 중 '축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둥그런 원의 왼편, 그러니까 내 옆에 앉아있던 여자들은 축구를 하는 여자들이었다.
그녀들은 나의 축구에 대한 관심을 듣고 반가워하며 나를 축구장으로 초대했다. 마침 바로 다음 날이 축구하는 날이라며. 그렇잖아도 SNS를 통해 우리 구에 여자 축구단이 있는지를 검색해 보다 올해 이사 가능성이 있어서 포기했던 터였다. 이사 가능성은 작년 말부터 있었고, 이놈의 이사를 언제 갈지는 나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르는데 그 걱정으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나는 다음날 저녁 축구장으로 향했다. 도착하고 30분이 흘렀을까? 스무 명 정도 되는 여자들이 축구를 하기 위해 한 곳에 모였다. 60분가량 코치님의 지도 아래 워밍업, 드리블 훈련, 패스 훈련을 했다. 춤추는 데만 몸치가 있는 게 아니다. 공을 차는 데도 몸치가 있다. 스스로의 서투른 몸놀림에 한 사람이 웃으면 다 같이 크게 웃었다. 코치님의 목소리는 방방 뜬 초등학생들을 다루 듯 점점 커졌다.
물론 처음 출석한 나는 잔뜩 긴장을 해서 남들이 웃을 때 따라 웃을 수 없었다. 묵묵히 몸 개그만 했다. 하지만 이 모임이 얼마나 무해한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의 훈련이 끝나고 난 후에는 팀을 나누어 직접 경기를 뛰었다. 세 개의 팀으로 나뉘었고 팀 당 두 번씩 경기가 진행됐다. 그런데 60분간 하하 호호 웃던 이 여자들이 경기를 하는 30분간은 별안간 다른 사람들이 된 것 같다. 패스 훈련 때 내 뒤에 서서 "애 셋 낳고도 몸이 이 정도면 훌륭하다" 칭찬하던 언니는 있는 힘껏 나를 밀어 넘어뜨린다. 그는 마치 수류탄 같았다. 하지만 발재간이 전무하기에 무조건 많이 뛰어 벌충해야겠다 마음먹었던 나는 아파도 금세 일어났다. 그러다 골문 앞에서 주워 먹기로 첫 득점도 했다(!) 화려한 영광도 잠시, 첫 득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볼 반칙으로 상대 팀에 페널티킥을 선사하기도 했다. 여기서 변명을 하자면, 사람들이 공간을 넓게 쓰지 않아서 아웃라인을 더 좁게 인식했고, 공이 나갔다고 판단해 스로인을 하려던 것이었는데... 코치님이 호루라기를 불자마자 같은 팀 언니 중 한 명이 뇌화와 같은 호통을 쳤다. 실로 오랜만에 혼도 나 본다. 상대 팀이 페널티킥을 실축했기에 망정이지 십년감수할 뻔했다.
축구장에 매고 간 가방의 어깨 끈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 집에 와서 씻고 나니 비가 시원하게도 내린다. 도서관-축구장 언니들의 말에 따르면, 4개월 전에 축구단을 창단한 이래로 모임을 가질 때 단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오른쪽으로 구르며 넘어져서 자기 전에 파스를 하나 붙였다. 오른쪽 갈비뼈 사이사이의 근육들이 아프다. 갈비뼈 사이사이 그토록 촘촘하게도 근육들은 붙어있었던가! 처음으로 고스란히 느껴본다. 다친 곳이 아플까 봐 자면서 의식적으로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던지 다음날 일어나 보니 이제 왼쪽 어깨가 아프다. 파스를 세 개로 늘렸다. 발가락도 아프다. 영어 단어 sensation은 (자극을 받아서 느끼게 되는) 느낌을 뜻한다. 우리는 거기서 파생된 sensational: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는데, 축구 한 번 하고서 각종 센세이션을 센세이셔널하게 느낀다.
'내가 이선비가 된 이유'라는 제목을 걸어놓고 삼천포로 빠져 축구 이야기를 길게도 했다. 그건 작가 닉 혼비를 오마주 한 작가 김혼비를 이선비가 오마주 했기 때문이다. 김혼비 작가의 글은 웃기다. 술술 잘 읽힌다. 그의 글을 닮고 싶다. 그리고 그는 축구를 한다. 그것도 닮을 계획이다. 그가 쓴 다른 작품들을 다 찾아 읽었지만 어쩐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만은 아껴놓고 싶었는데 이제 그 책을 읽을 자격(?)이 갖춰진 것 같다. 거기에도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한 센세이션들이 센세이셔널하게 담겨 있을까? 아무쪼록 이선비는 앞으로 책도 열심히 읽고, 글도 착실히 쓰고, 축구도 신나게 할 작정이다. 물론 남편의 장난도 잘 방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