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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비 Jan 02. 2024

내가 자주 쓰는 말: 축구

  분주히 저녁 상을 차린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수업 시간과 식사 시간을 차별하지 않는다. 맛난 밥을 해줘도 먹으면서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다. 우리 부부의 밥 먹기는 자못 전투적이 된다. 밥그릇 국그릇을 신속하게 비우고 한 놈 두시기 석삼이의 배식 섭취를 도와야 한다. 한바탕 전투를 치른 후 이제 설거지 당번은 남편이다.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를 배경으로 나는 유튜브를 켠다. 이내 그릇 닦는 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재생된 영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설거지를 마친 남편은 다가와 묻는다. "뭐 봐?" 나를 감싸고 있던 커다란 비눗방울이 순간 톡 하고 터지는 것 같다. "어어, 축구." 반복되는 상황, 반복되는 질문임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대답하는 나. 그렇게 축구는 온 신경을 앗아간다.


 요즘 20대들은 작년에 치러진 카타르 월드컵을 경험하고서야 "왜 다들 2002년, 2002년 하는지 이해했다"라고 한다. 2002년의 나는 중학생에 불과했지만 한일 월드컵의 열정, 열기, 광란, 그 축제의 분위기를 몸소 느꼈고 그건 카타르 월드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건국의 기원인 3.1 운동도 학생들의 참여가 한 주축을 이루었다 하지 않는가. 나는 중학생의 왕성한 혈기로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응원했었다. 파울이나 오프사이드 같은 규칙도 몰랐다. 중학생의 무구한 순진함으로 대표팀을 응원했었다. 그때를 살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다. 축구 축구 거리게 된 축구에 대한 나의 애정은 21년 전 그때, 싹틀 수밖에 없었다.


출처 theguardian.com

 대학교에 입학해서 한 학년 선배와 사귀게 되었다. 그 오빠는 공강 시간이 되면 어딜 가고 싶어서 좀이 쑤신 사람처럼 보였는데 한 번은 어딜 너무 가고 싶은데 거길 혼자만 가기는 미안했던지 같이 가재서 따라가 보았다. 피시방인가 의심했던 그곳은 다름 아닌 플스방이었다. 플스방이란 소니社에서 나온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콘솔 게임기를 이용해 주로는 축구 게임을 하는 공간이었다. 거기 갔더니 과방에서 자취를 감췄던 남자 동기들과 남자 선배들을 깡그리 다 만날 수 있었다. 누가 결석을 해서 안부가 궁금하면 거기 가보면 되겠다 할 수준이었다. 바야흐로 그 시절은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과 함께 플스방의 위세가 피시방을 꺾던 시대였다. 처음 플스방에 따라갔던 날, 게임을 하던 남자애들은 멀뚱히 서있는 나를 보고 자기들이 더 머쓱했는지 "너도 한 번 해볼래?" 물었고 나는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곧 게임기를 손에 잡았다. 막무가내로 달리고 스루 패스를 일삼던 나는 초심자의 행운 덕분인지 장님 문고리 잡 듯 골을 몇 개 넣기도 했다. 그러다 거기서 게임을 제일 못하는 애들 한 둘을 이기기도 했는데, 남자애들은 또 그게 재밌어서 나를 매우 추켜세웠다. '나 게임에 소질 있는 건가?’ 하는 착각과 함께 ‘축구 게임 또는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여성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구나’라는 생각도 은근히 품게 됐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성 선택’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약 십 년 후에는 그 이론을 확장시킨다. ‘자연선택’이 생물의 생존에 관련하여 진화를 설명한다면 '성 선택’은 번식에 관련하여 진화를 설명하는 관점으로 ‘자연선택’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한다. 나 역시 ‘성 선택’에 따라 진화한 인간으로서 "저는 축구를 좋아해요."라고 말할 때 그것을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은 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한동안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은 '성 선택’ 이론에서 배우자를 두고 하는 경쟁의 결과는 궁극적으로 암컷의 선택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다윈 선생이 옳았다. 나는 경쟁하는 수컷(남성)이 아니라 선택하는 암컷(여성)이다. 나는 축구 콘솔 게임도 하지 않고, 국가대표팀 경기 정도는 되어야 챙겨보는 수준의, 축구보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를 짝으로 선택했다. 그에게는 내가 축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굳이 어필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축구를 좋아하건 야구를 좋아하건 나는 그냥 축구를 좋아한다. 또한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클럽팀 경기보다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국가대항전을 더 좋아한다. 남편이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정도는 챙겨 보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뭐니 뭐니 해도 국가 대항전의 꽃은 FIFA 월드컵. 카타르 월드컵 이전에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정말 신이 나서 보았다. 우리나라가 아쉽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나서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을 응원했다. 프랑스어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처음으로 살아보게 된 외국이었던 프랑스가 나에게는 제2의 나라와 같기 때문이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신성 음바페의 활약은 대단했다. 프랑스의 국가원수 마크롱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경기를 직접 관람할 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월드컵 대회를 우승한 팀에게 수여하던 최초의 트로피인 쥘리메컵은 프랑스의 축구 행정가 쥘 리메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현재는 FIFA컵으로 바뀌어서 프랑스 대표팀이 프랑스인의 이름을 딴 쥘리메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 것이 애석하긴 하나 그들은 그해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금의환향했다. 마크롱은 대표팀을 엘리제궁에 초청했다. 프랑스 선수들은 대통령궁에 가면서 선글라스도 끼고, 대통령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노래도 막 부른다. 요즘은 부상이 잦아 유리 몸으로 불리는 은골로 캉테라는 프랑스 수비수가 있는데, 그는 러시아 월드컵 당시 메시를 전담 마크해서 공을 세웠다. 성격이 매우 수줍어서 다른 선수들이 그를 위해 캉테 응원가를 함께 불렀던 것이다.(우리가 다 아는 샹젤리제 Les Champs-Élysées라는 샹송을 개사한 노래다) 프랑스가 이긴 것도 멋있었고, 선수들이 대통령 앞에서 선글라스 끼고 노래하는 것은 분방해 보였으며, 어린 음바페가 월드컵으로 벌어들인 상금을 기부한다는 것은 기특했다. 축구는 경기도 재미있지만 거기서 파생되는 이야기들도 못지않게 흥미롭다.


출처 foot-national.com

 그 후로 다시 4년이 흐르고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개최되었다. 남편과 나는 서둘러 아이들을 재워놓고 조별 리그를 챙겨 보면서, 우리가 16강 진출에 성공했을 때는 숨죽여 부둥켜안고 뛸 듯이 기뻐했다. 사실 조금 뛰었다. 창밖을 보니 새벽 2시에 다들 집을 환히 밝히고 뛰고 있었다. 우리 대표팀은 최선을 다했고 9%의 확률도 뚫어냈지만 결승 진출은 확률이 훨씬 더 낮았기에 이후로는 프랑스 대표팀 응원에 돌입했다. 2022년 프랑스는 디펜딩 챔피언으로 월드컵에 참가했다. 직전 대회 우승국은 반드시 탈락한다는 속설을 깨고 다시 최후의 2강이 되었다. 프랑스에는 뛰어난 선수들이 많지만 대표팀 핵심 자원으로 쓰일 수 있었던 벤제마와 포그바가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고, 또 다른 결승 진출국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인이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길 염원하는 메시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건 뉴욕 양키즈 출신의 야구 선수가 한 말이지만,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은 정말이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경기였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갔고, 결국 메시의 대관식을 모두가 지켜보게 됐다. 음바페랑 나만 빼고 다들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그때 그 아쉬움을 얼마 전 이강인이 파리 생제르망에 입단하면서 달랠 수 있게 됐다. 음바페, 네이마르와 같이 뛰는 슛돌이라니. 우리는 한마음으로 이 삼각편대를 원했으나 음바페가 갑자기 레알 마드리드로 간다고 하질 않나, 음바페 없을 때 이강인과 금세 베프 먹은 네이마르가 별안간 사우디 알 힐랄로 간다질 않나, 네이마르가 빠지니까 음바페는 다시 돌아온 대고, 이 여름 이적 시장이야말로 진실로 진실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이래서 내가 매일 저녁 축구 유튜브를 놓지 못하고 있다.


출처 psgtalk.com

 일전에 축구를 좋아한다 말하면서도 스스로의 진심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것은 내가 여성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작가 캐롤라인 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문화는 여자들에게는 경쟁을 덜 가르친다. 아주 어려서부터 -학교 놀이터에서, 운동장에서, 교실에서- 경쟁하도록 훈련받는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우리는 협조하고 순응하도록, 공격성이나 이기성 같은 ‘여성스럽지 못한’ 감정들은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억누르도록 훈련받았다. 하지만 여성에게도 마음속에는 시기와 투지가 남아있다."(p.101 <명랑한 은둔자>) 나의 마음속에도 투지가 있다. 나는 이기는 것이 좋고 이기는 사람을 보는 것이 좋다. 좋은 패스가 골로 연결이 안 되면 소리를 지르고, 심판의 판정이 마음에 안 들 땐 한 번씩 육두문자를 내뱉는 것이 좋다. 축구는 나를 흥분시킨다. 그래서 이젠 확신을 가지고 하려 한다. 축구를 좋아한다 말하고 계속 축구 축구 거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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