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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비 Jan 02. 2024

두 번째 출석

2023.09.02


비가 올 것 같더니 그쳤다. 도서관-축구장 언니들의 말에 따르면 축구하는 날은 비가 오지 않는다.

 월요일 아침 첫 타임으로 네일숍을 예약했다. 패디를 지워보니 역시 예상대로 발톱에 멍이 들어있었다. 그 발톱 하나만 다시 매니큐어를 발라놓은 것 같다. 축구를 직접 해보니 조금이라도 꽉 끼는 신발은 절대 안 되겠다 싶었다. 남은 아홉 개의 발가락마저 희생시킬 순 없어. 축구단 사람들이 다들 풋살화를 신고 있길래 눈여겨봐 뒀다. 오후 3시 이전에 결제하면 당일 배송 된다는 풋살화 하나를 장바구니에 넣어뒀다. 그래놓고는 며칠간 고민했다. '이거 주문하면 진짜로 축구를 하겠다는 건데... 이렇게 얼결에 해도 되는 건지?' 스스로 한 번 먹은 마음은 잘 바꾸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그러니까 축구 앞으로도 할 거지만), 아무튼 반품이란 옵션도 있으니까... 풋살화를 결제했다. 신발은 다음날 신속히 배송됐다. 신데렐라의 심정으로 발을 살포시 풋살화 안으로 집어넣었다. 발가락이 앞 코에 살짝 닿는다. 슈퍼 와이드 발볼 용이라더니 그쪽도 그리 여유 있진 않다. 가로로 세로로 다 꽉 낀다. 신데렐라를 꿈꿨지만 신데렐라 언니가 되어버린 왕발의 운명이여. 결국 왕복 배송비를 지불하고 반 치수 큰 것으로 교환 요청! 했지만, 두 번째 출석 전까지 풋살화는 도착하지 못했다. 대신 가지고 있는 운동화 중에서 제일 낡고 편한 놈으로 신고 가기로 했다. 운동 끝나고 바꿔 신을 크록스 슬리퍼도 챙겼다. 손흥민 같은 선수들이 경기 직후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인터뷰하는 모습이 보기 안 예뻤는데, 예쁘고 자시고 발이 얼마나 아팠을지 이제 그 심정을 나는 안다.


 축구장에 가보니 코치님이 바뀌었다. 이번 주에 뵌 코치님이 원래 담당 코치신데, 지난주에 초등부 대회 참석 차 못 오셨던 것이란다. 회장 언니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이미 들은 이야기 같다? 지난주에 듣고도 머리에 입력이 잘 안 됐었나 보다. 아무리 침착하자 해도 첫날 경황없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두 번째에는 약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 대타 코치님은 파이팅이 넘치셨다. 진짜 코치님은 조용하고 차분하시다. 코치님이 구령을 크게 안 넣어주시니 힘이 잘 안 났다. 대신 진지한 분위기 속에 집중도는 더 높았다. 나는 여유를 가지고 집중력을 발휘하여 훈련에 임했다. 그러나 나의 발놀림은 답이 없었다. 저대로 두었다간 틀린 동작만 굳어질 것 같았는지 코치님이 나를 따로 빼서 인사이드 킥을 가르쳐 주셨다. 시키는 대로 할 땐 그게 참 잘 됐다. 그러나 코너킥을 찰 수 있는 수준은 절대 못 됐다. 훈련을 마치고 이번에도 세 팀으로 나뉘어 팀 당 두 번씩 경기를 뛰었다. 하필 경기 중에 코너킥을 찰 일이 덜컥 생겨버렸다. 무려 두 번씩이나. 마음은 이강인처럼 택배 크로스를 올리고 싶지만, 코너킥은 아직 나에게 벌칙이나 다름없는데. 눈곱만큼 있던 여유가 쪼그라들고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결국 첫 번째 코너킥은 보다 못 한 같은 팀 언니가 대신 차 주었다. 두 번째 코너킥이 닥쳤을 땐 용기를 내서 내가 차기로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코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공을 진짜 세게 찼는데, 그랬는데... 공이 그대로 눈앞에 있었다. 시원-하게 헛발질하고 상대 팀뿐 아니라 우리 팀까지 교란시키고 말았다. 코너킥의 굴욕 이후로 어쩌다 또 골을 넣긴 했다.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나의 골로 우리 팀은 1-0으로 경기에서 이겼다. 피치에 나갈 때마다 1 득점 1 쪽팔림을 기록 중이다. 아무튼 골을 넣으면 기분은 좋다. 땀에 젖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트가 빠른 음악을 찾아서 볼륨을 높이고 고개를 까딱까딱 거리며 운전을 했다. 창밖으로 사인을 기다리며 줄지어 있는 팬들만 없을 뿐. 내 마음은 경기에서 승리하고 슈퍼카를 몰며 퇴근하는 EPL 선수들과 같았다. 그나저나 풋살화만 사면 될 줄 알았는데 축구공도 하나 장만해야 할까 보다. 개인 훈련을 통해 굴욕에서 벗어날 길을 도모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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