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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비 Jan 09. 2024

추석과 축구

2023.10.06


약밥은 보기엔 그럴 듯 하나 물 조절에 실패하여 조금 질었다.

  2주 전 우중 축구를 마치고 이디야에서 따뜻한 차와 커피를 나눠마실 때, 한 언니가 '다음 주가 추석이니 떡을 해서 나누어 먹자'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총무 언니는 '우리는 그럴 돈이 없다'고 했고, 회장 언니는 '떡은 무슨 떡이냐'며 강도 2 정도에 해당하는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지난주 수요일에 축구를 마치고 보니 떡과 식혜와 밤과 배까지 나누어 먹을 음식이 풍성하게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대로 운동장 옆 벤치에다 차례상을 차려도 될 지경이었다. 이 무심하면서도 따뜻한 부산 여자들. 나 역시 없는 실력으로나마 약밥을 만들어 가서 추석 전야 음식 축제 라인업을 보강했다. 정말로 축구를 하고 싶어서 축구단에 들어갔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좋아서 다시 나올 수 없겠단 생각도 해본다.


축구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럴 테지만 축구 역시 노력 없는 발전은 불가능한 것. 축구공을 구매해서 개인적으로 훈련을 할 필요가 있겠단 생각을 계속해서 해왔다. 여기서 문제는 축구공은 사서 가질 수 있지만, 공을 차고 연습할 공간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인데 아파트 단지 놀이터는 공놀이 금지,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은 외부인 출입 금지이기 때문이다.(이 대목에서 요즘 아이들이 조금 불쌍하다) 축구단이 사용하고 있는 구장에 대해서도 검색해 보았더니 이는 공유 누리 개방 자원으로 사전 예약이 필요하고 비용도 지불해야 했다. 그 부분을 감수하고서도 남자 초/중학생들이 이미 축구장을 쓰고 있다면(축구장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덜 불쌍하다)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한 단원 언니의 전언마저 있었다. 언니는 축구공을 주문했다는 나의 말에 "그거 우리도 다~ 해봤다"는 답으로 나를 멋쩍은 웃음을 짓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역시 뭔가 저지르기 전에 언니들에게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 것인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떡이라도 먹는 것인가.(축구장과 축구공에 대한 조언을 준 언니가 바로 떡을 먹자고 주장한 언니다!)


하지만 언니들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으니 이번 추석 연휴는 길고, 나는 축구공을 사서 친정으로 가져갈 것이고, 내 고향 동네에는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한 운동장이 많다는 것이었다. 아니, 모든 운동장이 자유 출입이 가능하다. 이럴 땐 시골 인심이 좋다는 생각, 도시 생활은 조금 팍팍하다는 생각이 여지없이 든다. 그렇게 축구공을 사고 풋살화를 챙겨 고향에 내려가서는 머무는 동안 두 번에 걸쳐 모교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찼다. 도합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나의 축구 실력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진 않았을 테다. 그러나 한 번은 아이들과(남편은 장염에 걸려 처가에서 투병을 했다), 한 번은 완쾌한 남편과 함께 공을 차며 꽤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함께 땀 흘리는 경험은 서로를 즐겁게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몸소 느꼈다. 남편과는 앞으로 부부 싸움을 하면 축구를 하러 나오자는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였다.


부모님 역시 내가 축구를 한다니 매우 흥미롭단 반응들이셨다.(이제 온 가족이 나를 응원?) 아빠는 집 안에서도 발에 계속 공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며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제 와서 나를 손흥민으로 키울 셈인가 하는 의심을 잠시 품었다. 엄마는 축구단에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분들의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단 말에, 전부 다 언니라고 부르라며 호탕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 언니도 언니, 이 언니가 언니라고 부르는 언니도 언니, 하다 보니 엄마(나의 외할머니) 친구한테까지 언니라고 하게 생겼다'는 명언을 25년 전에 남긴 사람이 우리 엄마다. 엄마 나이의 단원이 계신단 말도 분명히 했는데, 엄마도 언니로 불리길 원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의심을 잠시 품었다.


축구 연습할 공간을 찾아보며 공유 누리 개방 자원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또한 축구공을 구매할 때 축구공에도 사이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5호 축구공을 사야 하는데 4호를 구매해서 반품 후 재구매 과정을 거쳤다) 추석 연휴에 아시안 게임 축구 경기를 보면서는 골킥, 코너킥, 오프사이드 상황을 반복적으로 학습했다. 집 안에서도 드리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 축구단 단원들에게 (글을 쓸 때만이 아니라)실제로 언니라고 불러'버려야' 한다는 사실도 부모님으로부터 배웠다. 이렇게 새로이 배운 것이 많으니 필히 써먹어야 할 것! 연휴가 끝나면 축구하는 수요일이 돌아온다는 사실은 연휴가 끝나가서 슬프다는 생각을 말끔히 지울 수 있게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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