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7
축구를 하며 땀도 이길 수 있었고 비도 이길 수 있었지만 생리통은 이길 수 없었다.
추석 연휴 기간에 고향으로 떠났던 전지훈련(?)에 더하여 그사이 PL에서 득점을 했던 손흥민과 황희찬의 활약상을 보고 또 보고, AG 남자 축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에 철저히 무너지는 상대팀 전술의 허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도 하면서 이번 주 수요일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러나 나는 대자연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하여 수요일 축구하는 날에는 아침에 달리기를 하고 가는 것이, 저녁은 5시 30분경에 조금 이르게 먹고 가는 것이 최적의 컨디션을 만들어 줌을 깨우칠 수 있었다. 오전에 달리기를 한 후 이른 저녁을 먹기 전까지는 괜스레 오버해서 평소 하지 않던 스케줄을 더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했을 때는 여지없이 피로도가 높아졌다. 운동선수들의 철두철미한 몸 관리에 대해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허나 미리 해놓은 연습도, 컨디션 관리도 생리통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생리 기간에도 달리기는 꾸준히 해왔지만, 30분가량 소요되는 나의 러닝 루틴과는 달리 축구는 한 시간 반 동안(러닝의 3배) 하게 되는 데다 이건 혼자 하는 게 아닌 단체 운동이기에 신경이 더 쓰일밖에... 운동하다 힘들고 찝찝하다고 돌아서 집에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달 생리통은 여독에 겹쳐 보통 때보다 더 지독했다.
진통제도 챙겨 먹고 축구장에 갔으나 신체적 고통만이 조금 줄어들었을 뿐, 올바른 판단을 내릴 정신은 유지하기 어려웠다. 표정이 굳어지고 말수도 줄어들었다. 훈련 시간에는 시저스를 비롯하여 상대편 수비수를 속이는 드리블을 배우고 연습했다. 이번 주에는 출석 인원이 많아 한 명씩 드리블 후 골대로 공을 차 보는 순서가 돌아오는 데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됐다. 내겐 그것이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졌다.
이후 팀을 짜서 경기를 하는데, 시작 전에 팀원들에게 미리 나의 컨디션 난조를 고백하고 공격수는 맡기 어렵겠다 이야기했다. 재미있는 점은 뒤이어 같은 처지에 처한 여성들이 둘이나 더 속내를 고백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셋은 쓰리백을 형성하여 최후방 수비수 역할을 도맡게 됐다.
이번 주에는 처음으로 축구단 최강 에이스와 한 팀이 되었다. 기쁜 마음과 달리 나의 얼굴은 내내 어두웠고, 그의 패스를 받아 골 맛을 볼 기회는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통상 에이스가 속한 팀은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정해진 수순과도 같았으나 이번 주 우리 팀은 승리를 거머쥐지 못했다. 쓰리백을 가엾이 여긴 에이스의 부단한 움직임으로 팀원 중 셋이나 제대로 된 땀 한 방울 흘려보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 지었던 것이 패배의 가장 큰 요인이었을 테다.
역시 축구는 혼자만 잘해서 이길 수 없다. 프로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팀을 위해서 혹은 팀에 도움이 되는’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 다음 주 수요일에는 나도 꼭 팀에 도움을 주는 일원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