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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비 Jan 15. 2024

가을이 지나가는 중

2023.11.08

  구청장이 다녀간 다음 주, 후원회장 발 방한 장갑이 단원 모두에게 지급되었다. 그날 나는 얼굴에 공을 맞았다. 정확히는 오른쪽 눈두덩이었다. 새 장갑도 받은 김에 공은 그냥 손으로 받을걸, 나는 축구왕 슛돌이지 피구왕 통키가 아니라며 얼굴을 들이댔더니 손으로 받으나 얼굴로 받으나 경기는 중단되고 말았고 다들 나에게 몰려와 생사와 안부를 물었다. 일전에 똑같이 공에 맞아본 적 있다던 한 언니는 내 머리통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3분가량 나를 폭 안아주었다. 근 30년 만에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대다수의 언니들이 내 눈이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했으나 충격이 망막에 가닿기 전 안구를 품은 분화구와 같은 광대뼈가 공을 받쳐주었고, 그보다는 타격으로 인해 뇌수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는데 역시 유경험자의 두개골 잡기 처방이 정확했다. 이 모든 일은 인원수가 맞지 않아 우리 팀 경기를 치르기에 앞서 내가 다른 팀 용병으로 가 뛰다 일어난 것이었다. 앞으로는 젊음과 체력을 믿고 나대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일주일을 보내며 눈두덩에 멍이나 들지 않을까 조금 염려가 되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내 얼굴은 아무렇지 않았다. 남편이 속상해하거나 한소리 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말들도 있었지만 남편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수년 전 미용실에 단발로 머리를 자르러 갔다 남편한테 허락은 받았냐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듣고 기함을 한 적이 있다. 긴 머리를 자르는 것이 미용사 본인도 아까워서 나온 말이었음을 아주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나, 그때나 지금이나 머리카락이나 얼굴이나 이건 나의 소유지 남편의 소유가 아닌데 거기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의 생각은 회사 혹은 집에 있는 남편에까지 가닿나 보다. 일주일 후 얼굴 말짱하게 축구장에 도착하여 모두의 시름을 덜어주고, 이번에는 내가 다른 사람의 부상을 유발할 뻔하였다(유발했다). 공을 보고 쇄도하다 회장 언니와 부딪혔는데 그대로 가면 언니는 넘어져 뒤통수를 땅바닥에 박을 참이었다. 달리기를 멈추고 팔을 붙들어 잡아 언니가 넘어지진 않게 했지만 어찌나 팔을 세게 쥐어 잡았던지 그의 팔뚝에는 내 지장이 푸르뎅뎅하게 찍히고 말았다. 바로 다음 주에 멍 연고를 사다 드렸다.


 축구를 잘하고 싶은데 일주일에 한 번으론 발전이 없는 것 같아 올해 남은 기간 동안은 일주일에 두 번 축구를 하러 가자고 마음먹었다. 원래가 화요일은 풋살장, 수요일은 인조 잔디 구장, 두 번씩 모이는 스케줄이지만 양일 모두 출석하는 단원들은 손에 꼽는다. 그도 그럴 것이 주부들이 저녁 7시에 모이려면 식구들 밥 다 차려주고 내 밥도 챙겨 먹고 양치하고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집을 나서야 하는데 그러면 오후~저녁 시간이 매우 급박하고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요일에는 출석 인원이 적다. 되레 그 점이 메리트가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찾아간 풋살장 수업에선 드리블을 하고 가다 공을 뒤로 흘리고 뒤돌아 다시 공을 잡아 패스- 하는 연습과, 공을 공중에서 떨어뜨려 놓고 킥- 하는 연습, 그리고 삼각 패스 연습을 했다. 모두 죽을 쒔다. 코치님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곁눈으로 보이기만 해도 내 발은 빨간 구두의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사람이 적어서 코치님 눈에 더 잘 띄는 것 같다. 외려 메리트가 없는 것 같다.


 다음 날, 인조 잔디 구장에서는 킥 연습을 했다. 나는 디딤발에만 신경을 썼는데 알고 보니 디딤발 보다 임팩트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디딤발이고 임팩트고 기초 공사가 매우 부실한 실력임을 점점 깨닫는 요즘이다. 그러다가도 한두 번은 공이 잘 맞아 뻥 뻥 소리를 내며 앞으로 쭉 쭉 나가는데 이것 참 스트레스 푸는 데 이만한 게 없었다. 경기에선 마지막에 상대 팀의 핸드볼 파울로 인한 페널티킥 찬스가 있었다. 그전까지 득점도 없고 실점도 없어서 0-0으로 경기가 끝날 판이었다. 나는 무슨 용기인지 페널티킥을 차겠다고 나섰고(나대지 않기로 했잖아) 결국 골을 넣었다. 오랜만에 골맛을 보았더니 도파민이 폭발했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동영상으로 남겨준 한 언니의 노고 덕분에 페널티킥 득점 장면은 박제되었다. 집에 와서 돌려 보니 머릿속에선 베컴이었는데 실제론 폼이 영... 박제된 동영상 덕분에 도파민 과다 분비는 막을 수 있었다. 비록 화요일엔 죽을 쒔지만, 수요일엔 배운 것을 써볼 수 있어서 보람됐다. 그것이 무엇이든 한 번보다는 두 번, 두 번보다는 세 번의 연습과 노력이 변화를 불러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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