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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비 Jan 17. 2024

얼음이 얼어도 축구

2023.12.20


  11월, 12월 올해 남은 두 달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축구를 나가기로 했던 결심은 그런대로 잘 지켜지고 있다. 남편의 회사 일로 화요일 두 번, 출장으로 수요일 한 번의 결석이 불가피했으나, 화요일에 빠지게 된 주에는 수요일에, 수요일에 빠지게 된 주에는 화요일에 꼭 출석했다.


3주 전에는 화요일 코치님, 이을용 코치님, 김민재 코치님, 수석 코치님 휘하 네 개의 팀으로 나누어 대항전을 치르고 (중)회식을 가졌다(요). 구단장님, 후원 회장님 등도 부러 시간을 내 나오셔서 직관하시고 MVP 시상도 했던 우리만의 작은 대회였다. (안)(중)내가 속한 팀은 2 무 1패로 네 팀 가운데 꼴찌를 했다(요).


2주 전에는 또 한 번 얼굴에 공을 맞는 부상이 있었다. 이번에는 공이 코 끝에 걸쳐 입술과 턱 부위로 안착했다. 공에 맞은 직후 하관이 얼얼한 게 공에 맞은 탓인지 추위 탓인지 구별이 잘 안 가더니, 다음날부터 윗니 아랫니 아귀가 안 맞는 느낌이 점차 강해졌다. 음식을 씹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오기로 더 열심히 먹어야지. 치아 교정하면서 살 하나도 안 빠진 사람이 바로 나잖아.

아빠가 새 풋살화를 사주셨다. 끈이 없는 걸로 사 신으라셔서 끈이 없는 줄 알고 샀는데 끈이 있다.

어제는 밥을 먹다 문득 '어, 이제 잘 씹히잖아?' 하는 감각이 뇌리를 스쳤다. 곧 윗니 아랫니를 맞부딪혀 보니 턱이 온전히 돌아온 느낌이다. 딱 2주 걸렸다. '그래도 다리 안 다친 게 어디야 축구는 계속할 수 있겠군' 생각해 놓고 중간중간 '치과 가서 엑스레이라도 찍어봐야 할까?' 고민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 남편은 이건 턱뼈의 문제라기보단 턱뼈 주변 근육의 문제일 공산이 크다며 이성적 판단으로 나의 걱정을 재워주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치과에서 문자를 보내와 내게 정기 검진을 받으라며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치과에서 이토록 나의 방문을 희망한다면 응당 의사 선생님을 뵙고 내 턱의 안녕 또한 여쭙는 것이 도리이겠다 하고 예약한 날짜가 오늘인데 마침 어제부터 다 나은 느낌이 들다니. 엑스레이를 찍을 하등의 이유가 없어졌다. 그리고 오늘 오전, 예약 시간에 맞춰 치과에 당도했다. 그랬더니 오랜만에 왔기 때문에 우선 엑스레이 먼저 찍어야 한다네. 결국 두 눈으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운명이었던 것인가. 까만 배경 위에 하얀 상으로 맺힌 스물네 개의 치아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치아와 잇몸 아래턱뼈 역시도.


이번 주에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다. 언제나 날씨가 온화한 부산도 최저 기온이 빙점 아래로 떨어졌고 아이들은 군데군데 얼음이 언 등하굣길을 겁도 없이 반긴다. 날씨가 추우면 씻기도 싫다. 한 번이라도 덜 씻으려면 땀이 안 나야 한다. 그렇다면 과격한 운동은 금물이지. 그러니까 어제(화요일) 저녁에 축구를 가기가 좀... 싫었다는 말이다. 화요일 축구 모임 장소인 풋살장은 집에서 거리도 멀다. 나는 운전이 싫다. 나는 추위가 싫다. 나는 추운 날에 운전하는 것이 싫다. 그러나 나는 지각도 하지 않고 풋살장에 도착하고 말았다. 고통을 좋아하는 나는 마조히스트인가. 축구 갔다 돌아오니 아드레날린 효과로 집은 같은 집이나 날은 마치 다른 날이 된 것 같았다. 축구, 이 농약 같은 가시나...


어제 풋살장으로 향하며 스스로 세운 목표는 오프 더 볼 움직임을 개선해 보기였다. 풋살 골대는 규격이 더 작아서 풋살장에서는 아직 골을 한 번도 넣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어제는 스스로 세운 목표대로 오프 더 볼 움직임을 통해 패스를 받아서 유효 슈팅을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다. 코치님도 칭찬해 주셨다. 칭찬 맞겠지? 화요일 코치님은 칭찬의 방식이 약 15도 가량 삐뚤어진 코치님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혼나는 게 좋기도 해.(나는 진정 마조히스트인가) 축구할 때 쓴소리를 듣는다는 건 내가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이고 배우고 다듬을 것이 많이 남았다는 뜻이고 따라서 재밌을 일이 앞으로 더 있다는 예고이므로.


한 가지 씁쓸했던 것. 어제 출석한 인원들의 숫자가 젊은 사람, 덜(?) 젊은 사람 비등하다면서 젊은 사람들끼리 모여 묵찌, 덜(?) 젊은 사람들끼리 모여 묵찌 해서 묵 팀과 찌 팀으로 나누어 경기를 할 거라는데 나한테 언니들 쪽으로 가라는 코치님. 젊은 팀의 최연장자는 나보다 네 살 적은 동생이었고, 덜(?) 젊은 팀의 최연소자는 나보다 열한 살 많은 언니였다. 언니들은 나더러 저쪽으로 가라 하고, 저쪽 사람들은 이미 묵찌를 시작한 상황 속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나. 그 5초의 찰나는 씁쓸함 만을 남겼다. 칭찬의 방식이 약 15도 가량 삐뚤어진 화요일 코치님, 어제 그건 기혼자-비혼자로 나눈 건가요? 출산 경험의 유-무로 나눈 건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코치님 본인 나이 이상-이하로 나눈 건가요? 나 아직 젊은것 같은데 약간 씁쓸하네?


친 혈육도 내가 젊은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주지 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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