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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토닥토닥-11] 2025년 12월 9일 화요일

by LYJ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다녀온 유럽은 여러모로 많은 일이 있었다.

2주 이상 넘어가는 유럽여행은 덜 재밌다는 걸 알았고, 하루 이만 오천보 정도 걷는 건 할 만해서 기뻤고,

큰 아이의 비자 문제로 꿀렁거리게 된 일시적 갈등은 나도 아이도 한 겹 두꺼운 사람이 될 기회가 되었다.

날씨로 여행을 망칠 뻔 한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살피고, 여행은 장소와 운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만나고 깊어지는 계기가 됨을 느끼기도 했다.

작은 아이의 "매사 걱정하기"가 극에 달했고, 그게 계기가 되어 아이는 감춰두었던 속내를 우리에게, 정확히는 내게 온전히 드러냈고, 아이를 향해 내가 갖고 있던 뭔지 모를 "신경쓰임"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대략 4~5살 때 겪은 사건을 5년쯤 지난 어느 날 용기 내어 꺼내 놓은 후로 10년이 지난 지금, 본인의 상태를 담담하게 또박또박 말한다. 주로 가슴으로 말하던 아이가 더없이 냉정하게 이번에는 머리로 자신을 설명했다.

10년 동안 겁이 나서 묻지 못하고 계속 아슬아슬한 느낌으로 계속 고민했던 나와는 다르게 작은 아이는 자신을 똑바로 보고,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을 찾아내었고, 결론까지 내린 후에야 비로소 내게 말을 한다.


그저 자라나기도 벅찬 10대의 10년 세월을 꾸역꾸역 살아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너무 미안해"

"외국에 나와서 좀 더 예민해서 그런 거지, 괜찮아. 그렇게 심각한 상황 아니야."

"이런 얘기를 아무 걱정 없이 엄마한테 할 수 있어서 나는 정말 다행인 아이야."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내가 다녔던 정신과를 소개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래"


본인은 PTSD 전문의가 아니라고 다른 병원을 소개해줄 수도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는데 그래서인지 한 달이 되어 가는데 약이 효과를 보이는 것 같진 않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려면 얼마나 걸릴까? 하는 나의 걱정과 달리 아이는

유럽여행으로 오히려 자신감도 생기고, 아르바이트로 돈도 벌고 있어서 존재감도 올라갔다며 웃는다.

이제는 시그니처가 된 분홍빛 볼터치가 귀엽게 반짝인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나는 안다.

작은 아이의 인생이 계속 빛날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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