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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도록 아름다운

[토닥토닥-7] 2025년 5월 26일 월요일

by LYJ

흐리고 서늘한 날이 계속되다가 모처럼 화창하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매번 가는 연구원 바로 옆 카페가 쉬는 날이다. 점심을 먹고 지도를 검색해 문을 연 무인카페를 찾아 책을 들고 나섰다.

단독주택들 사이에 자리한 카페는 꽃집에서 함께 운영하는지 꽃과 화분으로 장식되어 다른 세상 같다.

생각지 않았지만 골목을 채우고 있는 꽃이 너무 이뻐 봄이 가기 전에 집안으로 봄꽃을 들이고 싶어졌다.

홀린 듯이 크게 한 다발을 꾸며 들고 카페 입구 데크의 테이블에 앉아 한강 작가의 '흰'을 읽었다.


한참 몰입해 있다가 바람이 느껴져 책에서 눈을 뗐다. 서로 다른 보랏빛을 가진 꽃다발과 아이스라테, 새로 장만한 선글라스와 무심히 엎어놓은 읽던 책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를 채우는 햇빛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작가의 세상에 존재하는 '흰'것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내 삶의 '흰'것은 어떤 것일지 내내 생각했었다.

아! 이렇게 무심한 순간에 나의 '흰'것을 알아차린다.

우연히 온 여기가, 기온과 바람이 이토록 적당한 날씨가, 무심히 올려둔 사물의 배치가, 그 사이를 빈틈없이 메우는 정오의 햇빛이,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무엇보다 지금 이런 순간을 알아차린 나의 내면이 나의 '흰'것이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날에 찾은 나의 '흰'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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