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축제 도둑

by 김관우

<축제 도둑>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열리는 초록등 축제를 손꼽아 기다렸다.

꼬집은 듯 아린 9월의 바람이 귀를 스치면, 사람들은 가면을 꺼내 쓰고 밖으로 나왔다.

춤을 추고, 웃고, 지난 한 해의 실수를 적어서 종이배에 담아 강물에 띄워 보냈다.

배가 흘러가는 동안 사람들은 더 나은 자신을 다짐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했다.

축제를 며칠 앞두고 마을 광장의 북이 사라졌다.

다음 날엔 전등이 하나둘 꺼졌고, 그 다음 날엔 꽃 장식들이 몽땅 뽑혀져 나갔다.


“마을에 도둑이 들었다!” 시장이 소리쳤지만 아무도 그 도둑을 본 사람은 없었다.

감시를 세우고 순찰을 돌려도 소용없었다. 감시자는 졸았고 순찰자는 길을 잃었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광장에는 바람만이 남았다. 고개를 푹 숙인 바람이었다.


아이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그 사람 얼굴이 없대.”

“밤마다 웃음을 훔쳐간다더라.”


마리는 그 말들이 그냥 장난 같지 않았다.

그녀는 축제를 정말로 사랑했다.

축제 날이면 엄마는 서랍 깊숙이 넣어둔 귀걸이를 꺼냈고, 아빠는 코끝이 벌게질 때까지 웃고 다녔다.

할머니는 해마다 같은 얘기를 했지만 모두가 처음 듣는 것처럼 귀를 기울여주었다.


축제를 지켜야했다.

마리는 몰래 밖으로 나와 도둑을 기다렸다.

하늘에 초승달이 기울고 새벽 공기가 팔목을 파고들 때까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드디어 그를 보았다.


도둑은 검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외투는 그가 움직일 때마다 공기처럼 희미해졌다.

손에는 뚜껑도, 라벨도 없는 투명한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그 병 안에는 소리들이 뒤섞여 있었다.

박수소리는 물속의 구슬처럼 굴러다녔고, 웃음소리는 해파리처럼 둥둥 떠다녔다.

꽃잎이 부딪히는 가벼운 사각거림과 눈동자끼리 마주치는 찰나의 정적까지 그 병 속에 담겨 있었다.

도둑은 광장의 장식들을 하나씩 떼어내 병 안에 넣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마리가 그를 향해 물었다.


“왜 훔치는 거예요?”


도둑은 놀라지 않았다. 돌아보지도 않은 채 병을 들어 달빛에 비췄다. 달빛은 병 안에서 반사되지 않고 스며들었다.


“주운 거야.

너희가 잃어버린 것들이라서.

기쁨, 감탄, 진심..., 예전엔 사람들이 가슴 속에 간직했거든.

이제는 모두 사진 안에다 밀어 넣더군.

웃음은 디지털로 갈아버리고 마음은 가면 밑에서 숨만 쉬고 있어.”


마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은 이상하게 마음에 박혔다.


“그럼…, 축제를 돌려줄 수는 있어요?”

마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둑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참 후, 그는 입꼬리를 기울였다.

“진짜 축제를 불러올 수 있다면.”


그 다음 날, 마리는 광장에 나왔다.

하나도 예쁘지 않은 전구를 켜고, 색종이로 접은 꽃을 걸고, 깡통을 두드렸다.

리듬은 엉망이었지만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 춤을 췄다. 고양이처럼, 낙엽처럼, 약간의 부끄러움과 단단한 용기로.


그 소리는 골목을 따라 퍼졌고, 어떤 창문은 소리에 반응해 활짝 열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광장으로 나왔다. 어색한 얼굴에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누구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진심이었다.

박수가 울리고, 눈물이 떨어지고, 가면은 얇아졌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도둑은 오지 않았다.

대신 광장 한편, 오래된 가로등 밑에 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투명한 유리병. 병 안에는 소리 하나가 떠다녔다.

웃음이었다.

그건 작년에 마리가 광장 한가운데서 처음 터뜨린 웃음이었다.

조금 어설프고, 약간 삐걱거렸고,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병 아래엔 접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그 종이엔 연필로 눌러 쓴 글씨가 삐뚤빼뚤하게 적혀 있었다.

[마음으로 다시 축제를 시작한 너에게- 이건 네가 흘린 것. 내가 훔쳐가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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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엽편)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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