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6일차

by 김관우

<6일차>


“잠깐만···”


그녀는 화장실 문 손잡이를 돌렸다. 한 번- 두 번.

딸깍, 딸깍. 소리는 났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온몸으로 문을 밀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침묵이었다.

특유의 ‘고장 난 듯 아닌 듯’한 정적.

처음엔 해프닝 같았고, 다음은 실수 같았고, 금세 공포로 가속됐다.


집엔 그녀 혼자였다.

전세로 들어온 새 아파트. 아직 이사한 지 하루밖에 안 됐다.

짐 절반은 여전히 박스 안에 있고 냉장고도 비어 있었다.

휴대폰은 식탁 위에. 문 하나가 모든 걸 가로막았다.


“아··· 진짜···!”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은 없었다.

위층도, 아래층도, 비어 있었다.

입주 초기 아파트의 침묵은 도서관보다 무겁다.

소리쳐도 목소리는 벽에 부딪혀 튕겨 나왔다.

마치 누군가 따라 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였다.

집에서 일했고 인간관계는 얕았다.

가족은 지방에 살았고 연락은 드문드문한다.

친구도, ‘언제 한 번 밥 먹자’만 반복하던 관계들.

어디로 이사 온 건지 아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그 생각이, 지금은 그녀를 문 뒤에 가둔 족쇄처럼 느껴졌다.


1일차


첫날은 탈출 시도였다.

그녀는 자리를 잡았다. 수건을 두 개 깔고 앉았다.

슬리퍼를 벽에 세우고 도구처럼 살폈다.

문고리 틈에 뭘 넣을 수 있을지 연구했다.

샴푸 뚜껑, 치실 케이스, 철 수세미.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모든 시도는 조용히 실패했다.

변기 수조 뚜껑을 들어 문을 내리쳤다.

손등이 찢어지고, 소매가 젖고, 입술이 말랐다.

그 날 밤, 거울을 봤다.

눈이 커지고 광대가 내려앉아 있었다.

자기 얼굴이 낯설었다.

거울에 대고 웃어봤다.

그건 웃음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었다.


2일차


허기가 몰려왔다.

물만 마셨다.

몸이 식었다.

타일이 몸 아래에서 서서히 체온을 빼앗아갔다.

수건은 눅눅해졌다.

숨소리가 더 커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숨소리만 남았다.

배는 고팠지만 배보다 더 불안한 건 ‘기억’이었다.

문이 처음 왜 안 열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고장이었을까?

아니면 밖에서 누가 일부러?

생각은 점점 음모로 흐르고, 음모는 곧 망상과 섞였다.

그녀는 중얼거렸다.

“누가 날 가둔 건 아니겠지?”


3일차


잠을 자고 깼다.

아침이었는지 저녁이었는지 몰랐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몸에서 땀이 빠지고 입술이 갈라졌다.

그녀는 가족을 떠올렸다.

엄마는 아직 내가 이사한 주소를 몰랐다.

연락은 사흘 전에 보낸 문자 하나가 마지막이었다.


“이사 잘 끝냈어. 나중에 부를게.”

그 ‘나중’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벽에 기댔다.

무언가 꿈틀대는 느낌이 들었다.

벽이 살아 있는 것처럼. 호흡하는 것처럼.

그 기분은 착각이 아니라 감각의 붕괴였다.


4일차


그녀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치약통을 베고 누웠다.

문득 머리 위 환기구를 봤다.

그걸 타고 나가면 살 수 있을지도?

한참을 생각하다 결국 시도했다.

변기를 밟고, 수조 뚜껑에 발을 올리고, 팔을 뻗었다.

미끄러졌다. 떨어졌다.

이마를 찧었다.

피가 났다.

고통은, 오히려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았다.

그녀는 그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타일에 썼다.

“살려줘.”


5일차


문이 열렸다.

정말로.

아무 소리도 없이 문이 ‘툭’ 하고 열렸다.

빛이 쏟아졌다.

거실. 쌓여있는 이사 박스. 먼지 없는 바닥.

스탠드 아래 고요한 공간.

그녀는 나왔다.

숨을 쉬었다.

울지 않았다.

단지 손을 벽에 짚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살았어…”

그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갑자기 감정이 따라왔다.

울음. 떨림. 해방감. 허탈감.

그 모든 게 한꺼번에 쏟아졌다.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엄마’ 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울면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 갇혔었어. 화장실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누구세요?”

순간,

모든 게 멈췄다.


휴대폰 화면이 어그러졌다.


6일차


그리고,

눈을 떴다.


여전히, 타일.

여전히, 열리지 않은 문.

여전히, 화장실.


그녀는 천장을 봤다.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물은 아직 나왔다.

그게, 지금 남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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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엽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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