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속 사과 한 알>
사과는 참 모욕적이다.
자기 관리에 실패한 흔적 중에 이렇게 단정하고 동그란 게 또 있을까?
마트에서 사과를 집어 들던 나는 무척 그럴듯했다.
"이제 진짜 건강 좀 챙기자."
영수증에 찍힌 청송 꿀사과 1알은, 결심의 마스코트이자 나의 의지였고, 다짐이자 예정된 배신이었다.
그날 밤은 컵라면이었다.
다음 날 아침은 초코파이 두 개였다. 점심은 편의점 삼각김밥, 저녁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건 대개 탄산과 기름이 개입했다는 뜻이다.
그 모든 식사 사이에서 사과는 조용히 있었다. 말없이, 그러나 또렷하게.
마치 내가 ‘내일부터 진짜’라고 몇 번을 되뇌었는지를, 껍질 위에 투명한 타임스탬프로 각인해 놓는듯했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사과를 지나쳤다.
얼음처럼 굳은 눈빛으로 탄산수를 꺼냈다.
어떤 날은 바나나우유를 꺼냈고, 어떤 날은 라면에 넣기 위해 달걀을 꺼냈다.
그때마다 사과는 내 눈에 걸렸다.
걸리지만 걸려선 안 되는, 마치 전 연인의 SNS를 스치는 그런 감각.
냉장고 속은 작은 우주였다.
사과 옆에는 반쯤 비워진 요거트와 유통기한이 어제까지였던 슬라이스 햄, 그리고 오래된 시금치가 종잇장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 공간에서 사과에게 죄지은 사람처럼 굴었다.
죄책감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그러다 문득 죄책감조차 감각하지 못하는 무감각이 찾아온다.
그게 제일 무섭다.
어느 날 사과를 들어봤다. 껍질이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이제 날 먹겠다는 거냐?"
혼자서 괜한 농담을 중얼거리자 묘하게 죄책감이 살아났다.
이쯤 되면 사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몇 번이나 자기 자신을 속였는지를, 또한 여전히 그걸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는지를 보여주는 기념비였다.
한 번은 그 사과를 꺼내 씻고 물기를 닦은 뒤 그대로 다시 넣었다.
그게 내가 계획을 ‘실행했다’고 느끼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었다.
“너는 잠깐 바깥공기를 마셨어. 이 정도면 훌륭한 아침 루틴이지?”
그 말이 나 스스로에게 변명이 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날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먹는 일에도 다짐이 필요하고 다짐에는 늘 실패가 따라온다.
그게 어른이 된다는 뜻이라면 나는 아주 철저히 어른이다.
계획을 세우는 데는 재능이 있고 실행에 실패하는 데는 철학이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나는 사과를 반으로 갈랐다.
반은 먹고 반은 접시에 담아두었다. 남긴 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다음 날 아침, 남은 조각은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무슨 신호 같았다.
“난 변했어. 너는?”
그날 나는 마트에서 사과를 하나 더 샀다.
이번엔 ‘건강 좀 챙기자’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 사과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그게 궁금했다. 그 실험이 나를 조금씩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작심삼일이 반복되는 삶이지만 사흘 중 하루는 조금 더 진심일 수 있다는 것. 그걸 알게 되었다.
지금도 냉장고를 열면 두 번째 사과가 있다.
나는 아직 그걸 먹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먹을 생각으로 사과를 꺼내 물로 씻고, 칼로 썰고, 물기를 닦아 책상 위에 올려뒀다.
아직은 반만 먹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