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놀이>
햇살이 깊숙이 내려앉은 거실 바닥 위, 나는 엎드려 있었다.
바닥에는 온갖 쿠션과 인형들이 흩어져 나뒹굴었고, 내 등에는 세 살배기 조카가 말없이 올라타 있었다.
여섯 살 조카는 책상 앞에 앉아 크레파스를 쥐고 무언가를 잔뜩 그리는 중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수한 선들이 제멋대로 엉켜 있었고 그녀는 대단한 집중력을 보이며 말했다.
“삼촌, 이거 나중에 꼭 봐야 돼. 중요한 거야.”
나는 “그래-” 하고 대답하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허리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오늘만 벌써 여섯 번째다. 놀아달라는 요청은 언제나 명령처럼 날아오고, 나는 이상하리만치 그 명령을 거절하지 못한다.
명예도, 보상도 없는 관계.
하지만 작은 손이 팔을 당기기만 해도 나는 다시 몸을 일으키고 눈을 맞춘다.
조카들은 여동생의 아이들이고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들이다.
자식처럼 직접 품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애틋한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아이들을 통해 알았다.
부채감 없는 애정, 책임에서 조금은 벗어난 몰입,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무한한 감정.
아이들과의 시간은 축제처럼 번졌다가 체력의 한계를 마주할 즈음에서야 휘청이는 현실로 되돌아온다.
그날의 놀이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 있었다. 인형으로 병원놀이를 하다 삼촌은 환자가 되었고, 잠시 뒤엔 경찰이 되었다가 다시 도둑이 되었다.
방 안은 법과 무질서가 교차하는 전장이고 나는 항상 지는쪽이었다. 졌고 또 졌다. 이기지 않는다. 일부러 지는 중이다.
여섯 살 조카는 무릎 위에 올라타며 웃었다.
“삼촌은 왜 이렇게 약해?”
나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세 살 조카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삼촌 자는 척하지 마. 다 보여.”
조카들과의 놀이는 유년기를 잠시나마 다시 빌려 쓰는 일이다. 그 시간은 순도 높고 결백하며 동시에 가혹하다. 놀이에는 쉴 틈이 없고 조카들의 상상은 예고 없이 방향을 바꾼다.
체력이 바닥날 즈음에 아이들이 묻는다.
“삼촌, 우리 또 뭐하고 놀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세상의 중심에 선 듯한 착각을 한다.
이 작은 인간들이 나와 계속 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놀랍게도 나를 다시 일으킨다.
밤이 오면 아이들은 마치 한 번도 날뛴 적 없었던 듯 조용히 잠든다. 뺨은 붉고 이마엔 땀이 약간 배어 있다.
찍어둔 사진 속 얼굴은 늘 닮아 있다. 아이들은 닮은 얼굴로 다르게 성장하고 나는 늙어가는 얼굴로 같은 마음을 품는다.
문득 서글퍼졌다.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시간이 너무 짧게 지나갈 것 같았다
지금은 웃으며 올라타고 기대고 부르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게 흔적으로만 남을 것 같았다.
서글픔은 마치, 아주 오래전 비 오는 날 아버지의 젖은 어깨 위에 매달렸던 기억을, 우연처럼 기억하고 스쳐 보내는 것 같이 깊고 서늘했다.
그러나 언젠가 이 아이들이 나를 찾지 않게 되더라도 나는 분명 기억할 것이다.
오늘, 이 허리가 아팠던 날 나는 너희의 친구이자 놀이터였다고.
기꺼이 그랬고 또다시 그럴 것이다.
그것은 고된 일이었지만 동시에 나의 가장 온전한 하루였다.
이 진심이 너희 마음 어딘가에 작은 흔적으로라도 남는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