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시간

by 김관우

<익어가는 시간>


컵라면 뚜껑을 반쯤 열고 스프를 넣은 후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정확히 3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단순한 조리법의 지침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감정이 뜨겁게 달궈지고 서서히 익어가는, 정해진 통과의례다.


사람 사이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단지 어떤 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 마음은 항상 형태의 바깥에 있다.

관계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지 않은 상태, 선명치 않은 경계에서 감정은 조심스럽게 증기처럼 피어오른다.

고백이라는 단어는 그 끝에 있다.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 우리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온도로 마음을 데운다.


컵라면의 3분은 언어의 공백과 같다. 말을 하지 않은 순간, 혹은 말을 하기 직전의 침묵.

침묵은 그저 무언의 시간이 아니다.

형체 없는 진심이 겁을 내는 시간이며 내밀한 감정이 ‘지금’이라는 시제에 걸려 흔들리는 순간이다. 우리는 그 3분 안에 수십 번 머릿속에서 대사를 연습하고, 수백 번 상대의 눈빛을 상상하며, 수천 번 마음을 데운다.

그러나 3분의 시간에도 컵라면은 약간 덜 익어 있거나 약간 불어 있을 때가 있다. 아무리 시간을 맞춰도 그렇다.

마찬가지로 고백 역시 완벽한 타이밍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 이른 마음은 말이 완성 되지 않고, 너무 늦은 진심은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설인다. 마치 뚜껑을 덮은 채 김이 빠져나가는 동안 잠시 외면한 눈빛처럼.

익고 있는 것과 익은 것은 늘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삶은 1초의 정확함보다 1도의 온도 차에 지배당하는것이다.


가장 뜨거운 시간은 아직 말하지 않은 순간이다. 그 순간은 기대와 불안, 희망과 포기의 엷은 윤곽이 겹쳐진 풍경이며 누구도 보지 못한 마음의 가장자리다.

풍경은 3분 후면 사라진다.

뚜껑을 열고 젓가락을 집어 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 우리가 사랑을 기다리던, 익히지 못한 상태 그대로였던 순간들.

그러므로 사랑이란 고백 자체가 아니라, 그 직전의 기다림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김이 피어오르는 라면 용기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 앞에서 스스로를 조용히 끓이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은 흘러간다. 라면은 익고 감정은 식는다.

그러나 단 한 번, 뚜껑을 열기 전의 ‘그 때’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을 기다렸던 시간, 익지 못한 상태로 존재했던 가장 진실한 순간이었음을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어떤 사랑보다 더 깊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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