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없는 존중

by 김관우

<저울 없는 존중>


기억에 남지 않는 얼굴들이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 주민센터 민원창구의 직원, 편의점 계산대에 선 알바생, 동네 어귀에서 담배를 피우던 어르신.

그들은 내가 이름을 묻지도 않았고 물을 이유도 없다.

나는 그들을 ‘존재한다’고 인식했지만 ‘존재의 무게’를 느끼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나를 스쳐 지나가는 풍경으로 봤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교차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스쳐 지나간 풍경이 생각날 때가 있다.

어쩐지 문득, 아무 이유 없는 순간에 떠오른다.

달려오는 나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아줬던 배달원의 기다림, 카페에서 콘센트를 빌려 쓸 수 있게 자리를 양보해 준 학생의 손짓, 지하철에서 잠든 아이의 머리를 기댈 수 있게 조심히 공간을 만들어주던 중년 여성의 배려.


그들은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한 번의 호의를 베풀고 지나갔다.

그 순간이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따뜻하게 만든 날은 언제나 그런 작은 태도로 시작되곤 했다.


사람은 왜 살아갈수록 이득을 중심으로 관계를 설계하려 하는 걸까.

왜 타인의 존재를 존중하는 일이 마치 거대한 결단처럼 느껴지게 되었을까.

상대방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나는 무관심해지는 법을 너무도 잘 배워버렸다.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는 곧 배제해도 되는 존재가 되었고,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관계는 가볍게 여겨도 되는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배제의 순간들은 나의 결핍이기도 했다.


나는 본래, 깊은 이해관계로 얽히지 않았더라도 그 자체로 존중하는 삶을 지향했다.

살가운 관심을 직접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고, 아무런 이익이 오가지 않는 관계 속에서도 타인의 작은 마음결을 알아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섬세하도록 만들어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마냥 쉬운 게 아니었다.

다만, 내가 이득을 위해 사람을 대하는 순간보다 손해를 보더라도 누군가를 외면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건 확실했다.

그 기억은 때때로 내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었고 내가 무너져 있던 날의 작은 위안이 되어주기도 했다.

나는 그때의 존중을 기억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진짜 존중은 손익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바쁘다.

모두가 자기 삶을 붙들기 바쁘고 말 한마디 건네는 일조차 계산하게 된다.

‘그 말을 해도 되는 걸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볼까’, ‘괜한 오지랖은 아닐까?'

수많은 자문은 결국 침묵으로 이어진다.

침묵은 오해를 낳고 오해는 무관심을 키우며 무관심은 무례를 닮아간다.

그리고 그 무례는 나중에서야 나의 얼굴로 되돌아온다.


예컨대 어느 날 문득, 이미 곁을 떠난 누군가의 빈자리를 느끼며 뒤늦게 중얼거리는 것과 같다.

‘그 사람, 참 편한 사람이었지.’

하지만 그런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

그가 내 곁에 있을 때는 그 편안함을 ‘당연함’ 혹은 ‘평범함’으로 치부했고, 평범함은 결국 무시해도 좋다는 안일함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늘 그렇게, 지나간 사람의 온기를 기억한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에게 무심하게 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위해 아무 말 없이 물러서 준 이들의 배려를 여전히 모른 채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그러나 바뀌고 싶다. 내가 먼저 다정해지고 싶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 마음 어딘가에는 그들의 온기가 오래 남기를 바란다.

그건 인간이 서로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방식의 존중이니까.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누군가를 떠올릴 것이다.

한때는 너무 가까워서 소중함을 몰랐던 누군가, 혹은 너무 멀어서 알아차릴 수 없었던 누군가.

그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따뜻한 마음을 건넸던 날이 있었다면, 또는 반대로 싸늘한 무관심을 보였던 날이 있었다면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손해를 피하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잃은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을 배우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그러니 오늘은 이득과 손해라는 저울질을 멈추고 그저 곁에 있는 한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자.

그가 누구이든, 어떤 모습이든, 당신 삶의 한순간을 그저 스쳐가는 존재일지라도 그 자체로 이미 존중받을 이유를 지닌다.

존중은 그 어떤 계산보다 앞선 감정이다.

그리고 인간다움의 빛나는 시작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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