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면역>
연구소 야간 근무는 대체로 조용하다.
정확히 말하면, 특별한 일이 생길 확률이 현저히 낮다는 점에서 조용하다는 것이다.
천문학자 박지운은 조용한 사람이고 조용한 환경을 좋아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소란스럽다고 생각한 건 1년 전, 11월 14일 밤 2시 13분이었다.
그날 그는, 고주파 대역 우주 배경복사 관측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었다. 데이터는 주로 잔잔했고 극초단 주기의 전파 간섭이 드물게 들어오는 정도였다.
관측소는 남미 아타카마 사막 외곽 고지에 세워진 지 7년째였고, 지운은 그 중 다섯 해를 이곳에서 보냈다.
그는 별자리를 외우지 않았고 행성의 이름에도 관심이 없었다. 우주의 움직임, 정확히 말하면 파장 간 리듬 변화에만 집착했다.
그날 기록지에 처음 등장한 파장은 유독 이상했다.
지나치게 유기적이었다.
“...심장박동?”
그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운은 평소처럼 변수를 세워 분석했다. 기계 오작동 여부, 태양풍 간섭, 허블 상수 값의 미세 변화까지.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이 파장을 설명할 수 없었다. 파장은 불규칙하면서도 살아있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파형은 두 주기를 기준으로 수축과 확장을 반복했다. 간헐적 정지, 약한 반사, 그리고 다시 증폭.
지운의 전공은 고에너지 입자 간섭 분석이었기에 일단 이 현상을 ‘이례적 간섭’이라 표시하고 실험기록지에 입력해 두었다. 하지만 밤이 지나도록 그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서울대학교 생리학 연구소의 실험실에서 지운은 조현민 박사와 마주 앉아 있었다.
조 박사는 분석된 데이터 파일을 확인하며 표정이 굳어졌다.
“박지운 박사, 역시 이 파형은 면역 반응 초기의 탐지-반응 신호와 매우 흡사합니다.”
“네?”
지운은 숨을 들이켰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이건, 우주에서 왔다고요.”
조 박사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문제라는 거죠. 우주가 반응하고 있다는 거니까.”
지운의 손끝이 식어갔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지 못했다.
심장이 아니라 머릿속 어딘가에서 맥박이 느껴졌다.
면역 탐지 반응이라니, 지구가 그럼 항원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실험실 안은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지운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지구는, 거대한 생물체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기생물이다?”
그 말이 실제로 무슨 뜻인지 생각하려는 순간, 소름이 전신을 덮쳤다.
우주가 지구를 죽이려 하고 있다.
몇달 뒤, 전 세계 여러 천문 관측소에서 이상 파장이 감지되었다.
극지방 대기권에서는 전리층의 진동이 미세하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일본 큐슈 지역의 중력파 탐지 센터에서는 파형이 심장 부정맥의 패턴과 유사한 곡선을 그렸다.
지구의 중력장은 비틀리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수많은 GPS 위성이 수신 오류를 일으켰다.
좌표가 ‘살짝’ 움직이는 현상, 마치 지구가 천천히 밀려나는 것 같았다.
제네바 유엔 산하 ‘기후위기-우주대응 국제연합기구’ 특별 회의실.
20개국의 천체물리학자, 생물학자, 생리학자, 철학자, 그리고 몇 명의 종교학자가 참석한 비밀 회의가 열렸다.
이탈리아 생화학자 마르코 레첼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항원-항체 반응입니다. 그리고 우리 지구는 항원이에요.”
일순 회의장이 정적에 휩싸였다.
미국 생물학자 제이미 맥켄이 대꾸했다.
“우주를 생명체로 가정한다면 지금 우리는 면역 시스템의 제거 대상이 되는거군요.”
정적으로 가득찼던 회의장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소란을 뚫고 조현민 박사가 말했다.
“잠시만요. 생물학에서 꼭 모든 세포가 적이 되는 건 아닙니다.”
모두의 시선이 조박사를 향했다.
“유익균은 받아들여지죠.“
지운은 조 박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주를 속이자는거군요.”
“속이는 게 아니라 신호를 보내는 거죠. 우리는 이로운 존재라는 걸. 우리가 이 우주의 생에 기여하고 있다는 걸.”
회의 끝에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지구는 우주에게 유익한 존재라는 것을 ‘신호’로서 증명해야 한다.
연합기구는 이 시도를 ‘우주 항체 반응에 대한 항원결정기의 변증법적 개입’이라고 이름 붙였다.
일종의 우주 면역학 실험이었다.
기구는 새로운 장치를 설계했다. 특수 위상 반응 안테나로 기존 전파 형태가 아닌 리듬 구조, 파형 언어 자체를 새롭게 변형한것이다.
연구원들은 생명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평온한 상태의 상호작용’에 대한 파형 수치를 참고했고 바다 조류와 식물 성장 파형까지 분석에 포함시켰다.
몇 년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지구는 파괴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순환에 기여하는 유기적 항원”이라는 메시지를 파장으로 구성하는데 성공했다.
전송은 새벽 3시 34분에 이뤄졌다.
지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안테나가 하늘을 향해 조용히 떨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전송 이후 침묵은 계속되었다.
어떠한 응답도 없었다.
파장은 관측 너머로 사라졌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몇달 후, 변화가 생겼다.
극지의 대기 진동이 멈췄고 GPS 위성도 정상 복귀되었다.
무엇보다 그 ‘맥박 같은 파장’을 다시 감지했을 때, 처음과는 그래프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맥박의 리듬이 바뀐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 느슨하고, 조금은 동기화된 느낌.
사람들이 환호 했다.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우주가 지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지운은 그날 밤 관측소 뒤편의 협곡으로 나갔다.
칠레의 밤은 여전히 차가웠고 별들은 멀었다.
그는 돌 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기적이 일어난걸까, 이걸로 끝인걸까.”
그때 지운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용 관측기가 미세하게 진동을 일으켰다.
지운은 즉시 화면을 확인했다.
수신 신호: 동기화 프로토콜 감지됨.
신호 출처: 외부 좌표계.
코드명: ANTIGEN_0001.
화면을 보던 지운의 표정이 굳었다.
‘ANTIGEN...0001?‘
그는 즉시 로그 세부 항목을 열었다.
내용은 단순했다.
1번 항원 동기화 완료.
샘플 확보.
다음 표본 대기 중.
지운은 한참을 곱씹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그냥 받아들여진 게 아니었어… 우리가 샘플이었어.”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지구는 처음으로 감지된 항원, 즉 우주의 면역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시점에서의 기준값이자 비교군이 되어버린 존재였다.
면역 체계의 첫 반응은 항상 불완전한 수용이다.
외부 항원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을 때, 면역은 일시적으로 억제된다.
그러나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정보 축적의 시간이며 다음을 대비하기 위한 학습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지구는 살아남았지만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운은 천천히 중얼거렸다.
“우린 우주의 첫 번째 기억이 돼버렸군.”
별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것들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지 않았다.
그저 면역 시스템의 망막에 떠 있는 감지 좌표로만 느껴졌다.
“우주 어디선가 다음 신호가 이미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 항원이 살아남을 확률은... 현저히 낮아졌다.“
기준값이 된 지구의 리듬이 정말로 우주에 이로운가-
지운의 눈빛은 흔들렸고 머나먼 별빛도 함께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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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엽편)소설-